55일간 17명 살해한 김대두, 세탁소 제보로 검거
핵심 요약
김대두는 1975년 8월부터 약 55일간 17명을 살해하고 여성 3명을 성폭행했다. 피 묻은 청바지를 맡은 세탁소 주인의 제보로 경찰 잠복 끝에 검거됐다. 수감 후 범행을 참회한 그는 1976년 12월 28일 사형됐다.
1975년 8월 13일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남성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된 김대두의 범행이 시작됐다. 그는 전남 광산군의 외딴집에서 집주인 안모씨를 살해한 뒤 서울과 경기 일대를 돌며 약 55일 동안 17명을 살해하고 여성 3명을 성폭행했다. 피해자에는 칠순 노인과 어린아이도 포함됐다.
연쇄 범행을 끝낸 단서는 피가 묻은 청바지였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세탁소 주인은 1975년 10월 8일 수상한 청년이 혈흔이 남은 바지를 맡겼다고 청량리경찰서에 알렸다. 경찰은 세탁소 앞에서 잠복하다 바지를 찾으러 온 김대두를 붙잡았고, 그는 검거 직후 배가 고프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김대두는 논 4마지기와 밭 약 1000평을 가진 농촌 가정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대도시의 일류 중학교 진학과 유학을 추진했지만 시험에서 떨어졌다. 국졸 학력에 특별한 기술이 없고 키도 약 160㎝였던 그는 공장을 전전했으며, 폭력 등으로 전과 2범이 된 뒤 사회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큰돈을 노린 강도 범행은 이후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으로 번졌다.
김대두는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어른과 울음소리가 귀찮은 어린이를 살해했다고 말했고, 현장검증에서도 껌을 씹고 웃는 등 반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수감 뒤에도 교도관과 재소자를 폭행했지만 국선변호인 이상혁과 서울구치소 교화위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태도가 달라졌고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형장에서는 범행을 뉘우치며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고 전과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바로잡히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한 그는 사형 확정 9개월 뒤인 1976년 12월 28일 사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