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조롱 논란이 드러낸 기억교육의 공백
핵심 요약
배재고 야구선수들의 5·18 조롱 논란이 역사 인식과 시민적 감수성의 공백을 드러냈다. 개별 징계와 당사자 간 화해를 넘어 플랫폼의 혐오 증폭 구조를 규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기억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회복적 정의 교육을 함께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다.
배재고 야구선수들이 경기 도중 스타벅스의 ‘탱크데이’를 언급하며 5·18의 비극을 또래 놀이의 소재로 삼은 일이 시민적 감수성과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졌다. 민주주의가 다양한 역사 해석을 허용하더라도 희생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행위까지 권리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주 4·3과 천안함,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한국 사회의 비극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웃음거리로 소비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사건 이후 개별 학생에 대한 징계와 6개월 출전 정지가 거론됐고, 광주일고는 배재고 선수들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을 냈다. 두 학교 선수들의 화해와 연대를 회복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대응이 당사자 간 관계 개선에만 머물러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생들의 행동을 우발적 일탈이나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규정하지 말고, 정치권의 상대 악마화와 온라인 공간의 혐오 확산, 이를 무심히 소비해 온 사회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칼 포퍼는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해 성장한 나치즘과 파시즘의 경험을 토대로, 무제한의 관용이 관용의 토대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폴 리쾨르가 강조한 ‘정의로운 기억’도 과거를 우상화하거나 상처를 망각하는 태도와 거리를 둔다. 역사적 사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도덕적으로 응답하는 현재의 실천이라는 의미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과 미국 사회의 9·11 희화화 금기도 인간 존엄을 공동체의 최소 규범으로 삼는 사례로 제시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플랫폼과 교육을 함께 바꾸는 접근이 요구된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과 영국의 온라인안전법처럼 추천 시스템이 만드는 사회적 위험을 기업이 평가하고 완화하도록 하는 구조적 규제를 검토하는 한편, 학교에서는 사실에 충실한 기억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회복적 정의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알고리즘은 사회에 존재하는 분노와 편견을 상업적 기준으로 선별하고 증폭하는 만큼 게시물 삭제나 플랫폼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디지털 환경의 보상 구조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시민교육이 함께 달라져야 같은 조롱이 다른 표현으로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