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무죄가 되짚은 표현 처벌의 역사
핵심 요약
불법 구금 상태에서 작성된 자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고 A씨가 약 5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공법은 1980년 폐지됐지만 주요 규정이 국가보안법에 통합됐고, 국가모독죄는 1988년 삭제됐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국가모독죄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북한 선전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옥살이한 고 A씨가 약 50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8단독 나재영 판사는 불법 구금 중 이뤄진 자백과 이후 법정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도 찾기 어렵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무죄 판결은 확정됐다.
A씨는 1975년 경기 부천에서 주민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죽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당시 그는 영장 없이 6일 동안 구금돼 경찰 조사를 받았으며, 구속영장 발부 후 사흘 만에 검찰 조사까지 마쳤다. 형을 복역한 뒤 숨진 A씨를 대신해 자녀가 2024년 재심을 청구했다.
유신 시기에는 정부 비판이 반공법·국가보안법이나 국가모독죄의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1977년 법대생 두 명이 음식점에서 유신헌법과 독재체제를 비판하다 신고돼 경찰서로 끌려간 사례도 있었다. 두 사람은 수갑을 찬 채 폭행당했고, 부모들이 심야에 찾아가 선처를 호소한 뒤 풀려났다. 이 가운데 한 명은 폭행 후 약 사흘 동안 손목 마비 증상을 겪었다.
1961년 제정된 반공법은 1980년 폐지됐지만 주요 내용이 국가보안법에 통합됐다. 1975년 형법에 신설된 국가모독죄는 국외에서 국가기관을 비방하거나 국가의 안전·이익·위신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았고, 1988년 건전한 비판을 억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헌법재판소도 2015년 양성우 시인의 재심 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