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현장 기록이 되살린 제주 해녀의 바다
핵심 요약
고광민이 40여 년간 수집한 제주 해녀의 도구와 사진이 전시됐다. 행원리 해녀 공동체는 불턱 회의를 통해 입수 시간과 작업 질서를 정했다. 제주 바다 행정에 해녀와 현장 주민의 생활 지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서민생활사학자 고광민은 제주 바다를 되살리는 행정이 해녀와 현장 생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 제주 큰바다영갤러리에서 열린 ‘물질, 제주 해녀의 갯곳 생활’에는 그가 40여 년 동안 마을과 바다를 누비며 모은 물질 도구와 옛 사진이 공개됐다. 관람객이 도구를 직접 만지도록 한 전시는 해녀의 노동 방식과 제주 바다를 몸으로 가깝게 이해하도록 구성됐다.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어등개에서 자란 고광민은 1960년대 소라와 오분자기 등을 잡으며 바다를 생활 공간으로 익혔다. 당시 미역 채취일에는 해녀 300~400명이 한꺼번에 바다로 향했고, 해녀들은 추운 물질을 앞두고 달걀·참기름·막걸리 등을 섞은 오합주로 몸을 준비했다. 고무 해녀복이 등장한 1971년 이전에는 불턱 회의에서 입수 시간을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으로 정하는 등 공동체가 작업과 질서를 함께 결정했다.
제주대학교에 역사학과가 없어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서귀여상 교사로 2년 7개월 근무한 뒤 학교를 떠나 서민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국 각지와 일본·중국·몽골의 마을을 찾아 노인과 해녀를 만나 생활 방식과 물질 경험을 노트에 담았다. 제주대 박물관 학예사로 30여 년 일한 뒤에도 조사를 이어갔으며, 제주 관련 기록 대부분을 출판사에 넘긴 뒤 현재는 진도 아래 조도와 자은도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그의 기록은 제주 바다의 역사적 가치에도 닿아 있다. 1905년 성산에는 감태에서 요오드를 얻기 위한 공장이 들어섰고, 화산암의 많은 구멍은 해조류 뿌리가 엉키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해조류가 풍부한 바다는 전복과 소라를 비롯한 생명체의 터전이 됐다. 그러나 해안도로 건설과 마을 단위의 개발이 이어지면서 바다의 모습은 달라졌다. 고광민은 공무원과 현장 주민이 대립에 머물지 않고 해녀의 지식과 생활 경험을 행정에 반영해 바다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