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반에 응축된 ‘반지’, 한국 성악진 빛났다
핵심 요약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 3시간 30분의 하이라이트 공연으로 재구성됐다. 부천필의 대규모 관현악과 세미 스테이지 연출, 요약 자막이 압축된 서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사무엘 윤을 비롯한 경험자들과 이명주·김재형 등 첫 도전자들이 한국 바그너 성악진의 역량을 보여줬다.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막 초연 150주년을 기념한 하이라이트 콘서트가 지난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나흘간 약 15시간에 걸쳐 공연되는 4부작을 3시간 30분으로 압축한 무대에는 아드리앙 페뤼숑이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내외에서 활동해 온 한국 성악가들이 올랐다. 페뤼숑과 사무엘 윤이 구성한 축약판은 작품별 시간 배분과 생략된 음악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정리했다.
공연은 악보를 보며 노래하는 콘서트 오페라에 연기와 소품을 더한 세미 스테이지 형식으로 진행됐다. 조은비의 연출은 음악에 맞춘 움직임과 치밀한 동선으로 집중력을 높였고, 전예완의 요약 자막은 잘린 대목의 서사를 명료하게 이었다. 2005년 한국 초연 자막을 번역했던 전예완은 원작의 언어적 감각을 살린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초심자도 긴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했다.
110명이 넘는 4관 편성의 부천필은 거대한 음향을 유연하게 통제하며 작품 전체의 일관성을 지켰다. 일부 악기의 실수와 세부 표현의 아쉬움, 성악진을 배려한 음량 조절로 관현악이 다소 작게 들린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발할 입성’, ‘발퀴레의 기행’,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에서는 역동성이 선명했고, 장송행진곡과 ‘신들의 황혼’ 피날레는 강한 여운을 남겼다. 페뤼숑은 잦은 생략에도 음악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대규모 악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사무엘 윤은 알베리히의 분노를 자유로운 가창과 연기로 밀도 높게 드러냈고, 하겐은 어둡고 신중한 인물보다 눈치 빠르고 냉소적인 성격으로 풀었다. 최인식은 깊이와 여유를 갖춘 보탄을, 김기훈은 명징한 음색으로 도너와 군터를 표현했다. 첫 바그너 배역에 나선 이명주는 고난도 고음과 기품, 섬세함을 겸비한 브륀힐데를 선보였고, 김재형은 영웅적 배역에 맞춘 정교한 발성으로 지크프리트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김승직의 지그문트, 김은희의 지글린데, 박승주의 로게·미메를 비롯해 라인의 세 처녀와 파졸트, 파프너, 프로까지 고른 완성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