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명 순국한 대구형무소, 남은 유산은 벽돌뿐
핵심 요약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는 225명으로 서대문형무소보다 30명 많다. 대구형무소는 1971년 철거됐으며 당시 유적으로는 벽돌 몇 장만 남아 있다. 121㎡ 규모의 역사관은 사진과 모형 중심이어서 항일 역사를 담는 데 한계를 보인다.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것으로 확인된 항일 독립운동가는 225명이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진 독립운동가보다 30명 많지만, 대구형무소 건물은 1971년 철거돼 옛 모습을 보여주는 현장 유산이 사실상 사라졌다. 현재 남아 있는 당시 유적은 형무소에서 사용했던 벽돌 몇 장이 전부다.
옛 형무소 터에 자리 잡은 삼덕교회 2층에는 지난해 대구형무소역사관이 설치됐다. 그러나 전시 공간은 121㎡에 그쳐 사진과 건물 모형을 통해서만 과거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연면적 8천200여㎡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비교하면 68분의 1 수준이다. 관련 실물과 연구 자료의 수집·발굴도 충분하지 않아 수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한계가 크다.
대구형무소와 서대문형무소는 모두 1908년 문을 열었다. 경성감옥으로 출발한 서대문형무소에는 광복 때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갇혔고, 유관순 열사와 허위·이강년 의병장 등이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햇빛과 화장실이 없는 독방, 감시 망루와 붉은 담장, 교수형 형구가 남은 사형장 등 당시 수감과 처형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도 보존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역사관으로 개관한 뒤 해마다 60만 명이 찾는 역사교육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관람객들은 옥사와 사형장을 직접 살펴보며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고초와 광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반면 더 많은 순국자가 확인된 대구형무소는 원형 시설이 없어 제한된 전시물에 의존하고 있다. 항일 역사를 보여줄 자료와 공간의 격차 속에 대구의 독립운동 유산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