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9500건 기록에 새긴 법과 사람의 무게
핵심 요약
김세희가 15년 2개월간 처리한 형사사건 1만9500건의 기억을 책으로 엮었다. 친족 성폭력과 부산 돌려차기 사건 등 공소장 밖의 사연과 수사 과정이 담겼다. 선처의 온기와 법 집행자의 태도, 인간의 책임을 함께 성찰한다.
김세희의 신간 ‘지키기 위해 지지 않기 위해’는 15년 2개월 동안 검사로 일하며 처리한 형사사건 1만9500건의 기억을 담았다. 사건이 법정에 정식으로 넘겨지기 전, 다섯 평 남짓한 수사실에서 만난 피의자와 피해자의 사정, 공소장에는 적을 수 없었던 뒷이야기와 수사 주체로서 겪은 개인적 고뇌를 412쪽에 풀어냈다. 생각의힘이 펴냈으며 가격은 1만9800원이다.
책의 첫머리에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한다. 의붓딸들을 성폭행한 의붓아버지가 구속되자 어머니는 자녀들의 진술 번복을 종용하고 선처 합의서를 내밀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는 오피스텔 로비 CCTV에 담긴 폭행과 피해자의 우측 발목 폐용 진단을 마주한 순간을 되짚는다. 이후 피해자가 국정감사에 출석해 스스로 걷는 모습을 뉴스 화면으로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던 기억도 적었다.
성기 확장술 때문에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범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성범죄 피의자에게 대응하기 위해 남성 성기의 평균치와 의학 자료를 파고든 일화에서는 수사 과정의 집요함과 분노가 드러난다. 반대로 초임 검사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휩쓸려 자전거를 훔친 특수절도 혐의 소년의 어리숙함을 살폈다. 반성문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한 뒤, 훗날 그 소년이 주유소 직원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우연히 확인하며 선처가 지닌 온기를 돌아봤다.
마지막 장은 검사라는 직업 뒤에 있던 인간 김세희의 변화를 비춘다. 일에 헌신하면서 육아와 업무의 무게를 함께 감당한 그는 2024년 8월 사직을 결심하고 변호사로 옮겼다. 검사 일을 하나의 직장으로 여겼던 초년 시절부터 타인의 고통을 깊이 바라보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솔직하게 담았다. 법이 피해를 모두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는 없더라도 집행자의 태도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법의 관용과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