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문경서 개·돼지 가죽 공출 강요
핵심 요약
1940년 문경에서 주민에게 개와 돼지 가죽을 각각 3장씩 내도록 요구한 통지서가 공개됐다. 일제는 전쟁용 방한 물자를 확보하려고 조선 토종개를 대규모로 도살하고 가죽을 수탈했다. 이번 문서는 군수품 조달을 명분으로 생활 가축까지 공출 대상에 포함한 실태를 보여준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전후해 조선 주민에게 개와 돼지의 가죽까지 군수품으로 바치도록 강요한 문서가 공개됐다. 향토사학자 심정섭 씨가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내놓은 통지서는 식량과 소뿐 아니라 가축의 가죽도 전쟁 물자 수탈 대상에 포함됐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심 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외손자다.
가로 18㎝, 세로 13㎝인 통지서는 1940년 11월 15일 경북 문경 마성면장과 마성 경찰 주재소 수석 명의로 주민 김을용 씨에게 발송됐다. 문서에는 군수용품 조달을 이유로 1941년 2월 10일까지 견피 3장과 돈피 3장을 책임지고 공출하라는 요구가 적혀 있다. 개와 돼지를 대상으로 한 강제 공출의 품목과 수량, 납부 기한을 한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자료다.
일제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방한복과 방한모 등에 쓸 모피를 확보하려고 조선 전역에서 토종개를 대규모로 도살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조선원피주식회사를 세웠고, 관련 총독부령을 근거로 1939년부터 7년 동안 조선 토종개 100만∼150만 마리의 가죽을 수탈한 것으로 파악된다. 털의 밀도가 높고 가죽이 좋은 토종개가 집중적인 표적이 됐으며 토끼와 고양이, 양의 모피도 반출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선 개는 멸종 위기에 몰렸다.
문서가 작성된 문경에는 견탄, 견탄원, 견탄진처럼 개와 관련된 옛 지명이 남아 있다. 견탄원은 조선시대 호계면 견탄리에서 여행객과 상인에게 숙식과 휴식을 제공하던 역원이었으며, 문신 권근은 화엄대사 진공이 이곳을 지어 관원과 여행객을 편안하게 했다는 글을 남겼다. 험준한 문경새재를 오가던 영남 선비들의 길목이자 개와 연관된 전설이 전해지는 지역에서 발견된 이번 통지서는 국채·저축과 양곡, 소, 인력에 이어 생활과 밀접한 가축까지 수탈이 확장됐던 실상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