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81년, 흔들리는 핵 억지의 균형
핵심 요약
히로시마 원폭 투하 81년 뒤 핵 억지 체제가 다자 경쟁과 기술 오류로 흔들리고 있다. 북한발 공격을 가정한 시나리오는 오판과 즉각 보복이 세계적 핵전쟁으로 번질 위험을 보여준다. 서울이 평양에서 발사된 미사일의 짧은 사정권에 놓인 만큼 핵 폐기와 감축은 한국의 생존 과제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된 뒤 인류는 문명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핵의 시대에 들어섰다. 81년간 핵무기는 상대의 보복을 우려하게 만들어 전면전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했지만, 북한의 핵무장과 중국의 핵전력 증강, 인공지능 시스템의 오류 가능성이 겹치면서 오판에 따른 충돌 위험도 커지고 있다.
핵 억지는 선제공격을 받은 국가가 핵무기로 반드시 보복한다는 상호 파괴의 공포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이 원리는 국가 지도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전제가 무너지면 작동을 장담하기 어렵다. 광신적 테러집단이나 궁지에 몰린 독재자가 핵무기를 통제하거나, 여러 핵보유국이 동시에 대치할 경우 판단 착오가 연쇄적인 보복으로 번질 수 있다. AI 오작동과 레이더의 잘못된 경보도 우발적 핵전쟁을 촉발할 변수로 지목된다.
애니 제이콥슨의 논픽션 ‘24분: 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는 북한이 미국을 기습 공격한 뒤 미국이 82개의 핵탄두로 보복하고, 러시아가 자국 상공을 지나는 미사일을 공격으로 오인해 1000개의 탄두를 발사하는 상황을 그렸다. 미국이 다시 러시아를 전면 공격하면서 세계가 72분 만에 파괴된다는 설정이다. 러시아 상공을 피하거나 잠수함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전 가능성을 과장했다는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단일 명령으로 핵 공격과 즉각 보복이 이뤄질 수 있다는 위험은 남는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없었다면 일본의 항복이 늦어지고 미국의 본토 진격과 소련의 참전 확대 속에 막대한 희생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도 제기된다. 다만 현재 한국이 마주한 문제는 가정이 아니라 북한 핵무기의 직접적 위협이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했고, 평양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서울에 도달하는 시간은 최대 5분가량으로 제시된다. 핵무기의 세계적 폐기와 감축은 한국에 추상적인 평화 의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과제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