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 77주기, 독립유공자 재평가의 기준을 묻다
핵심 요약
헐버트 박사가 오는 5일 77주기를 맞는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새 사료와 객관적 사실을 중심으로 한 공정한 평가 기준 마련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호머 베잘렐 헐버트 박사가 오는 5일 77주기를 맞는다. 헐버트는 고종의 친서를 지니고 미국 특사로 활동하며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렸고, 헤이그 특사 3인과 별도로 일제 침략을 폭로한 ‘제4의 밀사’ 역할도 수행했다. 3·1운동 이후에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일제의 잔학성을 고발했다.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헐버트는 1886년 한국에 들어와 교육과 언론, 역사 연구, 선교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다.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리고 맞춤법 정비에 힘썼으며, 한글로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 교재 ‘사민필지’를 펴내 보급에 기여했다. 일제강점기에 약탈된 국보 경천사지 10층석탑을 되찾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헐버트는 광복 뒤인 1949년 정부 초청으로 86세에 한국을 다시 찾았으나 병을 얻어 서울에서 숨졌다. 장례는 외국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사회장에 준하는 예우 속에 치러졌고, 유해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됐다. 안중근 의사가 일제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으며 헐버트를 만난 적은 없지만 한국인이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기록도 그의 헌신을 보여준다.
정부는 축적된 연구 성과와 새로 발굴된 사료를 반영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공적 재평가와 포상 심사기준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허위 기록을 가려내고 추가 공적을 확인하는 일뿐 아니라 독립운동과 친일 행적이 함께 나타나는 인물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가 쟁점이다. 후손이나 연고가 없는 헐버트의 공적이 연구를 통해 계속 확인되는 만큼, 후손의 영향력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사료와 객관적 사실을 중심에 둔 심사 체계를 세우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