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바드가 남긴 2002년 외교 대응의 교훈
핵심 요약
미군 병사들의 무죄 판결과 출국은 2002년 한국 사회의 반미 여론을 키웠다. 허바드 전 대사는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즉시 요구하지 못한 점을 가장 크게 후회했다. 당시 대응은 신속한 메시지와 현지 정서를 고려한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남겼다.
2002년 11월 주한미군 군사법원이 효순·미선 양 사망 사건과 관련된 미군 병사 2명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이들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한국 사회의 반발이 커졌다. 미국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른 사법 절차라고 설명했지만, 상당수 국민은 책임을 피하려는 조치로 받아들였다. 대선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과 겹치면서 사건은 반미 정서와 정치 쟁점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토머스 허바드 당시 주한미대사는 11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애도와 유감, 재발 방지를 위한 협력 의사를 전달했다. 부시 대통령은 12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해 깊은 슬픔과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두 조치 모두 한국 국민을 상대로 한 대통령의 공개적인 직접 사과는 아니었다. 허바드는 훗날 사건 직후 백악관에 대통령 사과를 더 강하게 요구하지 못한 일을 외교관 생활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았다.
당시 주한미군 2사단장이던 러셀 아너레이도 초기 대응의 문제를 인정했다. 부대 입장 발표를 맡은 공보 장교가 사죄보다 해명에 무게를 두면서 한국 사회에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됐고, 대응의 오류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진 뒤였다는 취지였다. 허바드는 사건과 미국의 대응에 대한 분노가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줬다고 평가하는 한편,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부시 대통령의 사과와 SOFA 개정을 요구한 이회창 후보의 대응도 비판했다.
노무현 후보는 2002년 12월 7일 촛불 이미지를 담은 신문 광고를 게재하며 여중생 사망 사건을 선거 메시지와 연결했다. 허바드의 경험은 한미관계를 흔드는 위기에서 법률적 설명만으로 국민 감정을 수습하기 어렵고, 백악관의 신속한 메시지와 현지 정서를 고려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새로 부임한 미셸 스틸 대사에게도 절제된 발언,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백악관과의 소통, 긴급 상황에서의 독자적인 위기관리 능력이 핵심 과제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