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방의 혁신, 전국 제약 유통망을 열다
핵심 요약
경성의 한약방들은 양약 유입에 맞서 매약의 표준화와 대량 생산에 나섰다. 천일약방과 동화약방은 철도를 활용해 지점·대리점·특약점으로 이어지는 전국 판매망을 구축했다. 동화약방의 민강은 교육·계몽 활동과 독립운동에도 참여해 기업 활동을 사회적 영역으로 넓혔다.
개항 이후 양약과 일본계 약종상이 시장을 넓히자 경성의 일부 한약방은 첩약 중심 영업에서 벗어나 매약을 대량 생산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천일약방과 동화약방은 전통 비방을 표준화하고 양약의 재료와 제조법을 접목했으며, 상표 등록과 전국 판매망 구축을 통해 일본계 업체가 다수를 차지한 의약품 시장에서 조선계 회사의 기반을 다졌다.
천일약방 창업자 조근창은 집안에 전해지던 종기 치료 비약을 조고약으로 만들어 대량 판매했다. 1913년 구리개 한약방들이 공동 출자한 조선매약주식회사는 영신환 등 여러 제품을 생산하면서 제조법도 개선했다. 동화약방의 활명수는 가마솥에서 위장약 계통 한약재를 달여 여과한 뒤 클로로포름과 멘톨을 배합해 만들었다. 전통적인 이름과 원료를 유지하면서 서양식 제법을 결합한 신약이었다.
한약업의 상업화는 18세기 무렵부터 진행됐고, 약방은 종로와 구리개를 중심으로 남대문·서대문·용산까지 자리 잡았다. 개항 뒤 일본인 병원과 서양식 병원, 일본인 약종상을 통해 양약이 확산되면서 경쟁 구도는 급변했다. 대형 약방들은 철도를 이용해 제품을 공급하고 판매점을 세분화했다. 조선매약은 청매점·특약점·대리점을 운영했으며, 대리점에는 200원 이상의 보증금과 연간 500원 이상의 판매 실적을 요구했다.
1930년대 후반 천일약방은 대구·평양·광주 등에 큰 지점을 두고 50여 개 대리점과 1400여 개 특약점을 확보했으며, 조고약 소매처는 약 1만 곳에 이르렀다. 동화약방 초대 사장 민강은 소의학교 설립과 조선약학교 개편, 물산장려 활동에 참여한 데 이어 한성정부 수립 운동과 임시정부 연락망 구축에도 가담했다. 그는 1920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들 약방의 변화는 전통 한약업이 제조·유통·사회활동을 아우르는 근대 기업으로 확장된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