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안상호, 명부 밖 친일 행적 논란
핵심 요약
배우 하영의 집안 소개 이후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논란이 됐다. 안상호는 친일 관련 두 명부에는 없지만 내선융화를 내건 대정친목회에서 평의원을 맡았다. 일제는 일본인 아내와 꾸린 그의 가정을 내선동화의 모범 사례로 활용했다.
배우 하영(안하영)이 지난 7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인 집안 내력을 소개한 뒤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안상호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의 1006명과 친일인명사전의 4389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대정친목회 참여와 내선동화 사례로 선전된 이력이 확인된다.
1872년 또는 1874년 지금의 서울에서 태어난 안상호는 1894년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898년부터 도쿄자혜의원학교에서 공부했다. 1902년 일본 의술개업시험을 통과한 뒤 귀국해 병원을 열었으며, 고종과 순종, 황태자와 비빈을 비롯한 궁중 인사와 가족들을 진료했다. 의친왕궁 진료에 깊이 관여했고 북촌과 남촌의 부유층도 그를 찾았다.
안상호는 국권 상실 6년 뒤인 1916년 대정친목회에서 평의원을 맡았다. 이 단체는 정미칠적이자 경술국인인 조중응이 회장, 친일 기업인 조진태가 부회장으로 있었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의 융화를 뜻하는 내선융화를 활동 목표로 삼았다. 단순한 실업인 친목을 넘어 식민 통치 아래 두 집단의 융화를 추진한 조직이라는 성격이 기록에 남아 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친일 인사 구연수의 중매로 일본인 가와구치 이소코와 결혼했다. 일제는 안상호 부부와 다섯 자녀의 가정을 내선동화의 모범으로 활용했으며, 3·1운동을 약 3개월 앞둔 1918년 12월에는 그의 생활을 ‘완전히 일본화한 가정’으로 부각했다. 공식 명부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여부를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실제로 김용주는 두 명부에 빠졌지만 침략전쟁 동원 조직 간부 활동, 군용기 헌납운동 주도, 강제징병 찬양 등을 근거로 2015년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판단을 받았다. 2009년 사전 편찬 당시 재원과 자료 부족으로 해외·지방을 전면 조사하지 못한 한계도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