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투사로 만들지 않는 법
핵심 요약
범죄 피해자가 직접 투사가 되지 않아도 보호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김진주 씨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이후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권리를 끝까지 따지기 어려운 시민까지 억울하지 않게 지키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범죄 피해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만 하는 현실에서 법과 제도의 역할을 되묻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꼼꼼하게 이해득실을 계산하거나 부당한 일을 일일이 따지지 못하는 사람도 억울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이 제도의 본래 책임이라는 지적이다. 선의와 호의가 상대에게도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살아온 평범한 시민이 큰 사고 없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도 법적·제도적 안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의 절박함은 한 학회 초청 특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강연자는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로 알려진 김진주 씨였으며, 서현역 칼부림 사건 희생자의 부모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씨는 2022년 5월 22일 발생한 사건 이후 가명인 ‘김진주’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됐다. 그는 사건의 개요와 강연에 서기까지의 과정,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현재를 차례로 설명하며 피해자 보호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씨의 이름은 최근 한 국회의원의 게시물에 남긴 “지옥에나 가세요”라는 댓글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았다. 자신이 쓴 책의 제목인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가 보여주듯, 그는 자신과 같은 범죄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피해를 본 사람은 물론 앞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까지 법과 제도가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활동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모든 범죄 피해자가 김씨처럼 자신의 신원을 새로 세우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경험을 말하며 오랜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경제 개념이 부족하다거나 ‘전국 호구’라는 말을 듣는 사람까지 스스로 증거와 절차를 챙기며 투사가 되지 않아도 보호받게 하는 것, 피해를 입은 개인에게 끝없는 대응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것이 법과 제도에 남겨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