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 인사권 넘어 여성 조직까지 장악
핵심 요약
프란체스카 도너는 대통령 친족의 접근을 막는 동시에 인사권에 직접 개입했다. 대한부인회 총재로서 회비와 기부금을 걷고 여성 조직을 통제했다. 대한부인회는 1952년 재선 운동과 1954년 3선 개헌 분위기 조성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부에서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는 대통령 친족의 접근을 차단해 인척 비리가 발생할 여지를 줄였지만, 자신은 인사와 정치 조직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특히 정부와 집권당의 통제 체계에 편입된 대한부인회 총재를 맡아 여성 조직을 이끌고,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뒷받침하는 활동까지 주도했다.
프란체스카는 1934년 10월 8일 뉴욕에서 자신보다 25세 많은 이승만과 결혼식을 올렸으나 당시 이승만에게는 본부인 박승선이 있었다. 1949년 이승만의 본부인과 호적상 장남 일가 등 7명이 호적에서 삭제됐고, 이듬해 4월 프란체스카와의 혼인신고가 이뤄졌다. 이후 그는 대통령 친척을 면회시키지 말라고 비서실에 지시할 만큼 남편과 친족의 접촉을 엄격히 막았다.
대통령 비서관 박용만은 먼 친척의 면회를 허용한 뒤 중앙청 대통령비서실에서 경무대 비서실로 옮겨졌고 다시 외무부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프란체스카는 이기붕 비서실장에게 인사 조치를 지시하고 장택상 외무부 장관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박용만이 이승만에게 직접 항의했을 때 대통령은 해당 조치를 알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 뒤 이해를 구했다.
프란체스카는 1949년 대한부인회 제1회 전국총회에서 총재로 선임됐다. 여성 단체를 대한부인회로 합류시키라는 대통령 담화 아래 이 조직은 정부의 설립·운영·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회비와 기부금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거뒀다. 대한부인회는 1952년 비상계엄 선포 뒤 이승만을 제2대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행사에 참여했고, 1954년 3선 개헌 때도 장기 집권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