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지하철·공항으로 밀려난 노년층
핵심 요약
폭염과 냉방비 부담으로 노년층이 지하철역과 공항을 피서처로 이용하고 있다. 서울 무더위쉼터의 약 70%가 경로당 등 회원 중심 시설이어서 접근에 한계가 있다. 인천공항의 퇴거 조치를 둘러싼 반발 속에 실질적으로 이용 가능한 휴식 공간 확대가 요구된다.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은 10일 정오,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 개찰구 주변 계단과 타일 바닥에는 더위를 피해 나온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평소 탑골공원 나무 그늘이나 바둑판 앞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냉방비 부담과 카페 이용 비용, 주변의 시선 때문에 지하 대합실을 임시 피서처로 택했다. 한일우씨(83)도 집에서 에어컨을 켜기 어렵고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역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종로3가역과 같은 지하 역사는 기본 냉방이 가동돼 별도의 무더위쉼터를 운영하지 않는다. 음주나 소란으로 민원이 발생하면 정숙을 요구하지만, 조용히 앉아 더위를 피하는 이용자를 강제로 내보내지는 않고 있다. 다만 통로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짐을 펼쳐 놓는 사례가 늘면서 악취와 통행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도 생겼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장소인 만큼 공공시설 이용 질서를 둘러싼 갈등도 나타나고 있다.
24시간 냉방과 편의시설을 갖춘 인천국제공항에도 고령층과 노숙인이 몰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최근 공항시설법을 근거로 퇴거 명령서를 부착하기 시작했다. 홈리스행동 등 시민단체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를 빼앗는 조치라며 반발했고, 오는 12일 인천공항에서 퇴거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폭염을 피하려는 취약계층과 시설 이용 환경을 관리하려는 공항 측의 충돌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서울의 무더위쉼터 4017곳 가운데 2813곳은 경로당 등 특정 회원 중심 시설로,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조건 없이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된 곳은 202곳으로 5% 수준이다. 지정 경로당은 일반 주민도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일부는 방문자 명부만 작성하면 되지만, 이를 모르거나 기존 이용자의 눈총을 우려해 방문하지 못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접근성과 텃세 문제를 줄이고 취약계층이 부담 없이 교류하며 쉴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공간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