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밀어 올린 물가, 좁아지는 통화정책 여지
핵심 요약
폭염과 엘니뇨가 식료품 공급과 수입 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를 자극할 위험이 커졌다. 농산물 가격 충격은 가공식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번져 근원물가의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기후발 공급 충격과 수요 측 압력이 겹치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여지가 좁아지고 있다.
세계적인 폭염과 이상 기후가 농산물과 식료품 공급을 흔들며 국내 물가의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올랐다. 산지의 당근과 사과, 상추가 고온 피해를 입으면 농가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 가격에도 직접 반영된다. 정부가 농산물 할인 지원으로 충격을 일부 낮출 수 있지만, 해마다 강해지는 폭염이 구조적인 공급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은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올해 페루에서는 멸치 어획이 부진했고, 파나마 운하는 가뭄 탓에 통행 차질을 겪었다. 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크게 오르는 ‘슈퍼 엘니뇨’가 전 지구적인 기상이변을 일으킨 결과다.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엘니뇨로 글로벌 식료품 수급이 불안해질 경우 수입 물가를 거쳐 국내 소비자물가를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논의됐다.
현재까지 글로벌 이상 기후가 국내 물가에 준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충격이 현실화하면 강도가 커질수록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도 비선형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폭염은 농산물 가격을 즉시 자극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 가격과 외식 등 서비스 가격을 밀어 올려 통화정책의 핵심 지표인 근원물가를 높은 수준에 머물게 할 수 있다.
기후 요인 밖에서도 물가의 상승 압력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물가 우려가 크게 작용했으며, 금융통화위원들은 반도체 업황 호조에서 비롯될 수요 측 압력도 경계하고 있다. 신현송 총재가 주의 깊게 살피겠다고 밝힌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은 2.6%로 전월보다 높아졌다. 이달 연속 금리 인상 여부 역시 물가 흐름이 핵심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