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와 원조 딛고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 경제
핵심 요약
한국은 식민 지배에서 해방된 뒤 6·25전쟁으로 산업 기반과 농토가 파괴되는 위기를 겪었다. 삼백산업에서 시작해 수출과 중화학 산업을 키우며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현재 1인당 국민총소득 3만6855달러 수준의 원조 공여국으로 성장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한국은 35년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일제강점기에는 금속제 밥그릇과 농기구가 전쟁 물자로 수탈됐고, 쌀과 곡식도 빼앗겼다. 청년들은 군인이나 노동자로 강제 동원됐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폭탄 투하와 종전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식민지도 잇달아 독립을 맞았다.
광복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나 건물과 공장, 논밭이 파괴되고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 미국에서 지원한 밀가루로 끼니를 해결하던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65달러, 현재 환산액으로 약 8만 원이었다. 인도 82달러, 인도네시아 150달러, 가나 175달러, 필리핀 250달러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전후 경제 재건은 원조 물자를 가공하는 산업에서 출발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지원받은 밀과 원당, 원면으로 밀가루와 설탕, 면직물을 생산했고, 세 제품이 모두 흰색이라는 점에서 삼백산업으로 불렸다. 1960년대에는 수출 중심의 성장 정책 아래 가발과 신발, 의류를 만들어 해외에 팔았다. 광부와 간호사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났고, 1964년 수출액은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고속도로와 수출항을 건설하고 철강·기계·조선·자동차·전자 산업을 육성했다. 수출액은 1977년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전쟁의 폐허에서 빠르게 성장한 과정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다.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6855달러로 세계 6위 수준에 올랐다. 원조를 받아 생존과 재건에 나섰던 국가는 이제 다른 나라에 돈과 교육·의료 등을 지원하는 원조 공여국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