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책의 압박, 편집자의 흔들리는 확신
핵심 요약
출판 편집자는 매출 압박과 판매지수 속에서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올여름 도서 주문 감소와 높은 영상 광고 비용이 논픽션 시장의 위기감을 키웠다. 캐릭터 챗봇이 이야기 소비 방식을 바꾸는 가운데 출판은 고유한 역할을 다시 다져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만화 편집자 김해인의 새 에세이 <펀치>는 “이 책만 마감하면 다 때려치운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일본 만화를 만든 그는 고된 편집 노동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한국 출판만화를 더 멀리 보내겠다는 꿈을 놓지 않는다. 책을 잘 팔아야 한다는 현실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한 편집자의 작업 안에서 동시에 드러난다.
인문학 편집자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국판 512쪽짜리 철학책을 마감하는 동안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졌지만, 출간 뒤에는 판매부수를 확인하는 일상이 시작됐다. 편집자는 조직의 매출 압박과 계속 인쇄되는 책을 만들고 싶은 욕망 속에서 온라인서점 판매지수를 살핀다. 기대하지 않은 책이 예상보다 많이 팔리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독자가 그 책을 선택한 이유를 뒤늦게 찾게 된다.
올여름 출판시장의 수치는 이런 불안을 키웠다. 통상 물류회사와 제작처의 여름휴가가 끝나면 밀렸던 주문이 늘지만, 올해는 증가 폭이 미미했다.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가 확인한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의 물류회사 주문량은 바닥 수준이었고, 출판사 내부에서는 논픽션 시장이 위기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왔다. 유튜브 도서 광고 단가 역시 책 판매 규모와 영상 노출 비용 사이의 큰 격차를 체감하게 했다.
독자의 이야기 소비 방식은 캐릭터 챗봇의 성장과 함께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사용자와 인공지능 캐릭터가 대화하는 이 시장은 향후 10년간 30%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는 조사도 나왔다. 만화평론가 조경숙은 원하는 감정을 얻을 때까지 서사를 고칠 수 있어 기존 콘텐츠와 다른 강한 몰입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야기의 소비와 생산이 결합된 즐거움은 원고를 거듭 다듬는 편집자의 작업과도 맞닿아 있다. 만화와 영상, 챗봇이 독자의 시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도 인문학은 무언가를 이해하려 할 때 돌아오는 자리로 남아 있으며, 편집자에게는 그 영역을 계속 일구는 과제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