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미루나무 충돌 50년, 전쟁 문턱까지 간 한반도
핵심 요약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가지치기 현장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미군 장교 2명이 숨졌다. 북한군 중위 박철은 앞서 헨더슨 소령 집단폭행도 주도한 인물이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폭격기까지 동원한 폴 버니언 작전으로 대응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이 북한군의 습격을 받아 미군 장교 2명이 숨졌다. 오전 10시 30분 아서 보니파스 대위 등 군인 11명이 유엔군 제3초소의 시야를 가린 나뭇가지를 자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북한군 10명과 큰 충돌이 없었다. 그러나 오전 10시 47분께 북한군 장교 2명과 병력 15명이 합류하면서 현장 분위기가 급변했다.
북한군 중위 박철의 지시를 받은 병력 5명은 구타로 쓰러진 보니파스에게 달려들어 도끼로 머리를 공격해 살해했다. 폭행당한 채 방치됐던 배럿 중위도 이송 도중 숨졌고 다른 유엔군 병사들도 다쳤다. 박철은 본명이 홍성문으로 알려졌으나 출생 시기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단기 속성 교육을 거쳐 현지에서 임관한 이른바 직발 군관이었다.
당시 공동경비구역은 남북한군과 유엔군이 별도의 경계선 없이 함께 경비하던 공간이었다. 쇠징을 박은 군화에서 나는 소리를 과시하던 박철은 거친 행동 때문에 유엔군 사이에서 ‘불도그’로 불렸다. 그는 사건보다 1년여 앞선 1975년 6월 30일에도 군사정전위원회 제364차 본회의가 열리던 날 미 육군 W.D. 헨더슨 소령 집단폭행을 주도했다. 헨더슨은 두개골과 경추가 골절돼 본국으로 후송된 뒤 가까스로 생존했다.
미군 장교들이 숨진 뒤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도 북한을 두둔하지 않았다. 제럴드 포드 정부는 문제의 미루나무를 제거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실시했고 F-4·F-111 전투기, B-52 폭격기와 미드웨이 항공모함을 동원했다. 대규모 미군 병력이 전진 배치됐으며, 미 국방부는 북한군이 지상 공격에 나설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까지 진격하는 방안도 세웠다. 한반도가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에 직면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