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 위로를 담는 박주영 판사의 글쓰기
핵심 요약
박주영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재판에 피해자를 위로하는 기능도 있다고 본다. 산업재해와 전세 사기 사건의 양형 이유에 생명의 가치와 피해자를 향한 위로를 담았다. 책을 쓰며 독자의 반응을 받고 법관으로서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박주영(58)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판결이 처벌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상처를 위로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3일 부산지법에서 만난 그는 판사에게 부족한 외부 평가를 독자의 반응으로 보완하고, 타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책을 쓴다고 말했다. 법원에서는 동료 법관의 행동과 생각에 의견을 내는 일이 드물고 상급심 판단도 법률적 쟁점에 한정돼,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볼 장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의 양형 이유에는 재판 당사자의 삶이 구체적으로 담긴다. 2015년 11월 한 대기업 선박 건조 현장에서 한 달 동안 세 차례 사고가 나 하청 노동자 4명이 숨진 사건에서는 생명의 가치를 환기하며 피고인 전원에게 금고형과 징역형을 택했다. 2024년 1월 180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의 임대인에게 사기죄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한 뒤에는 20·30대 피해자들에게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박 판사는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수료 뒤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2006년 경력 법관으로 임용됐다. 조직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법원 문화에 적응하던 그는 2014년 처음 형사단독 재판장을 맡으며 권한을 피해자와 약자를 위해서도 써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피해자를 돕고 피고인의 갱생을 이끄는 일이라면 법관이 독립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신호를 후배들에게 주고 싶어 양형 이유를 자유롭게 쓰기 시작했다.
판결문을 토대로 한 산문집 ‘어떤 양형 이유’는 2019년 출간돼 4만부 가까이 팔렸다. 이후 ‘법정의 얼굴들’(2021), ‘괄호 치고’(2024), 독서 에세이 ‘죄와 책’(2026)을 펴냈다. 젊은 시절 시를 좋아했지만 창작을 직업으로 삼을 자신이 없어 글에서 물러섰다는 그는 정해진 집필 시간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메모하고 핵심어를 붙여 글을 완성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불행과 맞서는 무기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정신적 목발이며, 사람과 사랑을 기록 너머에 남기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