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녹취로 드러난 해병대 지휘부의 ‘VIP’ 은폐 정황
핵심 요약
해병대 지휘부가 ‘VIP 격노설’을 감추려 논의한 정황이 통화 녹취록에서 드러났다. 정종범 전 부사령관의 법정 진술과 군검사들의 영장 청구서 내용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기존 진술의 신빙성과 자료 삭제·입단속 과정에 대한 추가 규명이 남았다.
채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인 ‘VIP 격노설’을 해병대 지휘부가 조직적으로 감추려 한 정황이 구체적인 통화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과 정종범 전 부사령관은 국회와 수사기관, 법정에서 관련 내용을 부인해 왔지만, 2023년 8월 이뤄진 내부 대화에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폭로 가능성을 경계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한 내용이 담겼다.
김 전 사령관과 문연철 당시 해병대사령부 방첩부대장의 통화에서 문 전 부대장은 박 전 단장이 VIP 관련 내막을 글로 밝히면 파장이 클 것이라는 취지로 우려했다. 김 전 사령관은 근거가 없다고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고, 박 전 단장에게 녹음 파일이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문 전 부대장은 방첩사로부터 VIP 관련 내용을 더 확인하지 말고 기존 자료도 지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으며, 김 전 사령관은 장관의 지시를 자신의 지시처럼 설명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공보정훈실장을 외부 식당으로 불러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말하지 말라고 요구한 사실도 특검 조사에서 확인됐다.
정종범 전 부사령관의 법정 진술을 둘러싼 위증 의혹도 불거졌다. 정 전 부사령관은 2023년 7월 31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소집한 긴급회의에 참석해 ‘누구누구 수사 언동 안 됨’이라는 내용을 메모했지만, 박 전 단장의 항명 혐의 재판에서는 언론을 통해 VIP 격노설을 처음 알았고 사령관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해병대예비역연대는 대통령 격노 여부가 재판의 핵심 쟁점인데도 박 전 단장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했다며 정 전 부사령관을 모해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박 전 단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군검사들은 영장 청구서에서 대통령 격노설을 박 전 단장의 망상으로 규정했다. 1심 재판부는 해당 표현이 다소 과장됐지만 허위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군검사들의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포렌식으로 확보된 녹취에는 VIP 관련 언급과 자료 삭제 지시, 내부 입단속 정황이 함께 담겼다. 국회와 법정에서 이어진 기존 진술의 신빙성과 사건 은폐 과정에 관여한 인물들의 법적 책임을 가리는 진상 규명이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