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 출신 박은숙, 모시떡으로 일군 11억 기업
핵심 요약
박은숙 해오름푸드 대표가 영농과 식품가공업으로 연 매출 11억 원 규모의 사업을 일구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청진에서 굶주림과 고속도로 건설 노동, 탈북과 중국 생활을 거쳐 2008년 한국에 정착했다. 두 차례 농업 실패 뒤 모시떡을 개발해 가맹사업과 해썹 인증 준비로 사업 기반을 넓혔다.
북한 청진에서 태어난 박은숙 해오름푸드 대표가 영농과 식품가공업을 통해 연 매출 11억 원 규모의 사업을 일궜다. 박 대표는 지난달 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에서 안정적인 자립과 북향민의 정책 참여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정착 경험을 정책 현장에 전달해 왔다.
박 대표는 2011년 전남 광양의 임대 온실에서 함경도 향토 작물인 영채를 기르며 농업에 뛰어들었다. 영채 김치에 이어 중국 매운 고추와 공심채 등을 재배해 수도권 상권에 직접 판매했지만 경쟁 농가가 늘면서 판로가 좁아졌다. 척추 협착증까지 겹쳐 2016년 농사를 접은 뒤에는 농산물 자체보다 가공품에 승부를 걸기로 하고 3년 동안 새로운 작물과 제품을 연구했다.
그의 삶은 청진에서 시작된 가난과 노동의 연속이었다. 12세 무렵 아버지가 병으로 군에서 제대한 뒤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었고, 가족은 1996년께 산골의 부업 밭 경비 막사로 거처를 옮겼다. 19세에는 평양과 남포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에 자원해 하루 12시간 넘게 20∼30㎏의 돌 마대를 날랐다. 입당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송이 장사 실패와 빚을 겪은 끝에 2003년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4년을 산 박 대표는 2007년 조선족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 식당에서 일하며 2만 위안의 빚을 9개월 만에 갚았다. 2008년 자수해 정식 정착 절차를 마친 뒤 광양으로 이주했고, 모시떡을 만난 뒤 수백 차례 배합을 바꾼 끝에 7∼8개월 만에 원하는 맛을 완성했다. 여수 소라면에 문을 연 ‘모시보드레떡’은 2019년 추석을 계기로 손님이 몰렸고, 가맹사업을 위해 20평 매장을 40평으로 옮겨 해썹 기준 충족에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