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이장이 품은 어머니의 인심과 장손의 책임
핵심 요약
청도 운문면 이장 김병준 씨가 치매 증세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며 농사와 마을일을 맡고 있다. 어머니의 나눔은 대추·감자 수확과 충돌하지만, 복숭아에는 이웃과 정을 나누려는 뜻도 담겼다. 김 씨는 장손으로서 귀향 뒤 어머니와 고향을 지키겠다는 책임을 이어가고 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에서 2024년부터 이장을 맡은 김병준(67) 씨는 치매 증세를 앓는 88세 어머니 백순매 할머니를 돌보며 농사와 마을일을 함께 챙기고 있다. 11일 만난 백 할머니는 밭에서 딴 덜 익은 대추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건네며 먹으라고 권했다. 김 씨에게는 수확 전 열매를 지키는 일이 농사의 과제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눈앞의 것을 이웃과 나누는 일이 오랜 삶의 방식이다.
김 씨는 1100평 규모의 대추밭과 감자,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대추는 추석 뒤 찬바람이 불 무렵 수확해야 상품성이 생기며, 잘 말린 대추는 상자당 11만원 선에 거래된다. 약 100상자를 거두면 1000만원 안팎의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씨감자 3상자를 심은 밭에서는 한 이랑마다 20㎏들이 10상자 규모의 감자가 나오고, 신비 복숭아는 5월 초·중순 색이 바뀌는 시기에 따야 제맛을 낸다.
그러나 백 할머니가 대추와 감자를 일찍 따 이웃에게 나누는 일이 이어지면서 아들과의 갈등도 잦아졌다. 밭의 열매를 미리 따는 바람에 김 씨가 키우는 염소 먹이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반면 복숭아는 애초 수익보다 이웃과 친지, 지인에게 나누기 위해 재배해 온 작물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에는 토박이와 귀농·전입 주민 등 117명이 함께 살며, 주민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이다.
김 씨는 1984년 울산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에도 주말마다 고향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1991년 아버지를 잃은 뒤 장손으로 집안의 책임을 맡았고, 정년 4년 전인 2016년 명예퇴직해 귀향했다. 이듬해부터 반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이장으로 마을의 일을 돌본다. 주변의 요양원 권유에도 어머니를 시설에 보내지 않겠다는 뜻은 분명하다. 그는 효도가 쉽지 않은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어머니와 고향을 지키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