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짊어진 인천 소년군의 1926년 금강산행
핵심 요약
인천소년군 15명이 1926년 여름 천막을 메고 약 2주 동안 금강산 일대를 답파했다. 같은 시기 부산과 장성에서도 각각 45원과 35원 51전의 금강산 탐승 일정이 운영됐다. 당시에는 열차를 갈아타 금강산에 닿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 길을 이용할 수 없다.
1926년 여름, 인천소년군 단원 15명이 단장 곽상훈의 인솔을 받아 금강산 답파에 나섰다. 유니폼과 챙 넓은 모자를 갖춘 소년들은 제 몸만 한 천막과 짐을 메고 7월 30일 상인천역에서 열차에 올랐다. 정신과 신체를 단련하려는 여정으로, 산과 들에 직접 천막을 치며 숙박하는 야영 방식이었다.
소년들은 경성을 지나 철원·삼방·석왕사·원산·장전·고성으로 이동한 뒤 금강산 일대를 걸었다. 출발 당시 계획은 3주였지만 실제 일정은 약 2주로 마무리됐다. 해금강과 외금강, 원산, 석왕사, 삼방을 두루 거친 일행은 8월 12일 오전 8시 50분 상인천역에 도착하는 열차로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그해 여름 금강산에는 전국 각지의 탐승객도 몰렸다. 부산에서는 내·외금강과 해금강, 석왕사, 원산, 경성, 인천 월미도를 둘러보는 11일 일정이 마련됐다. 8월 5일 오전 6시 부산역을 출발하는 상품의 회비는 모든 비용을 포함해 45원이었다. 호남에서는 8월 1일 밤 장성역을 떠나 경성과 철원을 거쳐 장안사·표훈사·해금강·구룡연·만물상을 도는 8일 일정이 35원 51전에 운영됐다.
당시 월간잡지 한 부가 10전, 학교 한 달 수업료가 1원 안팎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45원짜리 금강산 여행은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다. 천막을 지고 산길을 걸은 소년들의 여정은 비용을 아끼면서 몸을 단련한 금강산행이었다. 2003년에는 남측 민간단체의 연탄 나눔 행사가 온정리에서 열렸지만, 오늘날에는 교통 여건이 크게 나아졌음에도 당시 소년들이 오갔던 길을 따라 금강산에 갈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