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문턱에 선 가족, 실패 비용까지 떠안는다
핵심 요약
한국의 창업자는 MVP 검증에 앞서 부모나 배우자의 동의를 얻는 현실적 관문에 직면한다. 자기 자금과 대출 의존도가 높아 사업 실패의 빚이 가족에게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나타났다. 자금 확보의 어려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창업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확인됐다.
스타트업은 최소 기능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고객 반응을 확인하는 MVP 테스트로 첫발을 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제품 검증에 앞서 가족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사실상 첫 관문으로 작동한다. 미혼 창업자는 부모를, 기혼 창업자는 배우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른바 ‘마더 테스트’와 ‘배우자 테스트’라는 말까지 생겼다.
부산에서 소스 제조업체 얌얌푸드를 시작한 김수진 대표는 사업 경험이 없는 집안에서 창업했다가 빚과 신용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공무원 출신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설득하지 못한 김 대표는 3000만원이 든 적금을 해지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물류 스타트업 디버의 장승래 대표도 자녀 셋을 둔 상태에서 대기업을 떠나기 전 사업의 성장 방안을 아내에게 여러 차례 설명한 뒤 동의를 얻었다.
장 대표가 2012년 시작한 유명 지식재산권 기념 우표 사업은 초기에 한류 열풍을 타고 일본과 미국에서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재고 관리에 실패하면서 4년 만에 빚이 10억원으로 불어났고, 집을 처분한 뒤 개인 회생 절차를 밟았다. 웰니스 플랫폼 달램의 신재욱 대표도 코로나 시기 매출이 막히자 제2금융권 대출까지 이용했다. 창업 2~3년 차부터 빚이 쌓이는 반면 매출과 추가 투자는 부족해 이자 부담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창업 실패의 부담이 대표 개인을 넘어 가족에게 이어지는 자금 조달 구조는 가족 동의가 필요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창업자 평균 창업 자금은 2억600만원이며, 자기 자금으로 시작했다는 응답이 95.2%로 가장 많았다. 은행·비은행 대출은 28.3%, 개인 간 차용은 8.8%였다. 창업의 최대 장애물로는 자금 확보의 어려움이 53.7%,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41.8%를 차지했다. 사회가 실패 비용을 분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이 창업 도전의 첫 심사자이자 최종 부담 주체가 되는 구조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