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가 털어놓은 이민 초기의 생계와 두려움
핵심 요약
차인표가 부모의 이혼과 미국 이민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과거를 공개했다. 영어와 기술이 부족했던 이민 초기에는 페인트칠과 식당에서 보조 업무를 맡았다. 힘든 시기에는 윤복희의 ‘여러분’을 반복해 들으며 위로를 얻었다.
배우 차인표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인식과 달리, 부모의 이혼과 미국 이민 이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과거를 공개했다. 그는 11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오늘을 버틴 노래-플레이리스트 109’에서 13살 때 부모가 이혼했으며, 20세 무렵 미국 뉴저지로 이주한 뒤 생업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이혼 뒤 아버지가 자녀들을 지원하려 노력했지만, 어머니가 혼자 삼형제를 돌보는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차인표는 1980년대에는 이혼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어머니는 이민을 택했고, 차인표는 어머니와 동생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면서 갑작스럽게 가장 역할을 맡게 됐다.
영어와 직업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이민 초기에는 일자리 선택에도 제약이 따랐다. 페인트칠에 나섰지만 숙련되지 않아 보조 업무를 맡았고, 식당에서도 의사소통이 어려워 웨이터가 아닌 보조원으로 일했다. 거듭 주변 역할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주류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인지, 계속 보조원으로만 살아가게 되는지를 고민할 만큼 심리적인 어려움도 컸다.
차인표는 20대 초반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마다 두려움이 반복됐다고 돌아봤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겼을 때뿐 아니라 배우 생활 중 소설을 쓰고, 데뷔 33년 만에 연극에 도전할 때도 같은 감정을 겪었다. 이민 약 3주 뒤부터 윤복희의 ‘여러분’을 반복해 들으며 위로를 받았고, 윤복희는 신애라와의 인연으로 두 사람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차인표는 1995년 신애라와 결혼해 1남 2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