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 창설 참여한 이용택 전 의원 별세…향년 96세
핵심 요약
중앙정보부에서 주요 공안·정치 사건 조사에 관여한 이용택 전 의원이 9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인혁당 사건 조사를 주도하고 김대중 납치 사건 진상조사에 참여했다. 중앙정보부 퇴직 후 기업인과 공기업 사장을 거쳐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두 차례 당선됐다.
1960∼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인민혁명당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 등의 조사에 관여한 이용택 전 국회의원이 9일 별세했다. 향년 96세다. 고인은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재직 기간 여러 공안 사건과 정치적 사건의 수사 현장에 있었다.
고인은 1964년 인혁당 1차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 5국 대공과장을, 1974년 2차 사건 때는 6국장을 맡아 조사를 주도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에는 수사국장으로 진상조사에 관여했다. 1976년 6국장을 끝으로 물러날 때까지 민청학련 사건과 위장 간첩 이수근 사건, 동백림 사건, 문세광 저격 사건을 직접 겪거나 가까이서 지켜봤다.
대구 달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농고와 단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갑종 7기로 장교에 임관했다. 군 복무 중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5·16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 창설에 참여했다. 퇴직 후에는 1976년 보아기계공업 회장, 1978년 대한지적공사 사장을 거쳐 1981년과 1985년 달성·고령·성주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고인은 생전에 인혁당 2차 사건으로 희생된 8명에게 애도의 뜻을 밝히면서도 당시 정권 관계자 전체를 반민주 인사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시 국가 안보를 절대 과제로 인식한 과정에서 무리가 뒤따랐다는 점은 인정했다. 김대중 납치 사건은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벌인 일이라고 지목했으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장과 한국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 총재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