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개혁 이끈 주룽지 전 총리 별세
핵심 요약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그는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WTO 가입을 이끌며 중국의 고도성장 기반을 다졌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개혁 관료로도 평가받았다.
1990년대 중국 국유기업 개혁과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주도한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수요일 오전 11시께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향년 97세다. 1998년 69세로 총리에 오른 그는 2003년까지 중국의 경제정책을 지휘하며 국유 부문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주룽지는 부총리 시절 가격을 통제하고 적자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을 끊어 인플레이션을 억제했다. 총리 재임 중에는 당내 보수파와 기업 경영진의 반발에도 개혁을 강행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은행·항공사·석유회사 등을 수익 중심 기업으로 바꾸면서도 정부 소유는 유지했으며, 경제 전면 민영화에는 선을 그었다. 1998년에는 국유기업 보유 아파트를 가구에 매각해 주택 소유 확대의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의 WTO 가입 협상도 그의 핵심 과제였다. 1999년 미국을 방문해 시장 개방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에서는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중국 내부에서는 양보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은 결국 2001년 12월 WTO에 가입했고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8%를 웃돌았고 2007년에는 14.2%에 달했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 규모에 올랐다.
1928년 10월 23일 후난성에서 태어난 주룽지는 경제계획 분야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1957년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의 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우파로 몰렸다. 문화대혁명기에는 농촌에서 노동했고 1979년 복권된 뒤 1988년 상하이 시장, 1991년 부총리, 1993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장쩌민과 리펑에 이어 당 서열 3위였지만 독자적 권력 기반은 약했다. 부패와 행정 실패를 공개 비판하고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으며, 1998년 홍수와 2001년 학교 폭발 사고 때 당국의 책임을 강하게 지적하거나 사과했다. 퇴임 뒤에는 공개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