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97세로 타계…중국 개혁·개방에 굵은 족적
핵심 요약
주룽지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12일 베이징에서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분세제와 국유기업·금융 개혁을 추진하며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이끌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성사시켜 중국의 대외 개방과 산업 성장을 뒷받침했다.
중국이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던 시기에 핵심 경제 개혁을 주도한 주룽지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오전 11시 6분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숨졌다. 향년 97세다. 1998년 3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총리를 지낸 그는 강한 정책 추진력으로 ‘경제 차르’, 엄격한 반부패 원칙으로 ‘현대판 포청천’이라 불렸다.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주 전 총리는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경제 기술관료였다. 국가계획위원회와 국가경제위원회를 거쳐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맡았고, 덩샤오핑의 발탁으로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올랐다. 장쩌민과 상하이에서 함께 근무해 ‘상하이방’과 접점이 있었지만, 중앙 무대에서는 개혁파 경제관료로 입지를 굳혔다.
그는 부총리 시절인 1993년 인민은행장을 겸하며 경기 과열과 물가 상승을 억제해 경제의 연착륙을 이끌었다. 이듬해에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세원·재정을 조정하는 분세제 개혁을 추진해 현행 중국 재정체제의 기본 틀을 세웠다. 총리 취임 뒤에는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금융·재정·주택제도 개혁을 밀어붙였고, 부실 중소 국유기업 정리와 평생고용 체제 해체 과정에서 수천만 명의 도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고통도 발생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주 전 총리의 대표적 성과로 남았다. 대외 개방 확대와 국내 산업 개혁을 함께 추진해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했다. 개혁 반대 세력과 자신을 위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는 일화는 그의 직설적 화법과 결단력을 보여준다. 2003년 퇴임 후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지만, 기자 문답과 연설을 엮은 저서가 인기를 얻으며 부패와 관료주의에 맞선 개혁가로 다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