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이지가 남긴 전위예술의 시간성
핵심 요약
존 케이지는 전위음악을 넘어 플럭서스를 비롯한 현대 전위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남겼다. 전위예술은 아름다움보다 파격과 깨달음에 무게를 두며 관객에게 낯선 감각을 요구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전위성을 잃은 작품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1992년 8월 13일, 맨해튼의 한 전위음악 카페에는 전날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의 ‘프리페어드 피아노와 실내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 흐르고 있었다. 뉴욕을 예술적 고향으로 여긴 케이지를 기리는 움직임은 도시 곳곳의 아방가르드 공간에서 한동안 이어질 분위기였다. 그가 남긴 전위음악은 폭넓은 전위예술 활동을 구성한 한 부분이었다.
케이지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개념미술가 요제프 보이스,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햄, 서양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과 깊이 교류하며 현대 전위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초 그래픽 디자이너 조지 마치우나스가 결성한 전위예술가 집단 플럭서스의 정식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동료보다는 스승이자 영적 아버지에 가까운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케이지 자신은 아버지가 아니라 삼촌으로 불러 달라는 농담으로 이런 평가에 응수했다.
전위예술은 현대에 관한 철학적 현실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관객에게 난해하거나 기이한 행위로 비칠 수 있다. 3차원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인간에게 물리학 공식에서 접하는 4차원적 실존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것과 같은 거리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보다 파격을 통한 깨달음에 무게를 두는 전위예술의 성격은 때로 유사 종교행위에 견줄 만한 경험을 만들며, 작품과 관객 사이에 이해와 거부가 엇갈리는 지점을 형성한다.
시간은 전위예술의 의미도 바꾼다. 1980년대에 접한 백남준의 TV 브라운관 설치미술과 2026년 스마트폰을 든 채 바라보는 같은 작품은 서로 다른 감상을 낳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아방가르드가 훗날 클래식으로 자리 잡기도 하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계속 생동하지 못하고 전위성을 상실한 작품은 고전이 아니라 사료나 화석, 심지어 잡동사니로 남을 가능성도 품는다. 한때의 파격이 시간 이후에도 의미를 유지하는가라는 질문은 예술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