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을 과시하는 소비, 새 기준이 된 효율
핵심 요약
저렴한 상품과 무지출 경험을 자랑하는 칩앤드힙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 품번 쇼핑과 거지맵,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가짜 배달 앱이 효율 중심 소비를 보여준다. 기업에는 낮은 가격과 함께 고객의 통제감과 현명한 소비자 정체성을 설계하는 과제가 생겼다.
낮은 가격으로 만족을 얻는 소비가 숨길 일이 아닌 자랑거리로 바뀌면서 ‘칩앤드힙(Cheap & Hip)’이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이소에서는 상품명 대신 제품번호를 공유하는 ‘품번 쇼핑’이 확산했고, 인기 상품은 품절과 재입고 알림 신청으로 이어진다. 올해 상반기 다이소몰 신상품 알림 신청은 96만건을 넘었다. 5000원짜리 상품과 편의점 조합을 찾아 인증하는 행동도 제한된 비용으로 생활을 설계하는 능력을 드러내는 방식이 됐다.
저렴한 선택지를 찾아내고 재구성하는 과정에는 놀이와 성취의 성격이 더해졌다. 2026년 3월 출시된 ‘거지맵’은 이용자 제보로 1만원 이하 식당을 모아 보여주며, 홍보비 없이 18일 만에 누적 이용자 94만명을 넘겼다. 예물 시장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성분·경도가 같고 가격은 통상 10~20% 수준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남은 예산을 신혼여행 등에 쓰려는 수요가 늘자 전통 예물 전문점들도 관련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지출하지 않은 하루를 기록하는 콘텐츠도 절약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가계부 인증과 무지출 일기, 유튜브의 무지출 브이로그는 소비 억제를 자기관리 과정으로 보여준다. 실제 배달 앱과 비슷한 화면에서 메뉴 선택부터 결제, 가상 라이더 배정까지 체험하되 돈과 음식은 오가지 않는 ‘가짜 배달 앱’도 등장했다. 소비 절차에서 얻는 만족은 남겨두고 지출과 칼로리만 줄이는 시뮬레이션으로, 단순한 인내보다 비용 없는 심리적 보상에 초점을 맞춘 형태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장기간 이어지는 생활비 부담이 있다. 청년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213만원이며, 식료품비가 37.6%를 차지한다. Z세대는 소유한 물건의 가격보다 한정된 자원을 얼마나 정교하게 운영하는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드러내며 통제감과 효능감을 얻는다. 기업에도 가격 인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과제가 생겼다. 소용량과 샘플로 구매 문턱을 낮추고, 득템 과정과 절감한 금액의 쓰임을 공유하도록 설계해 고객이 ‘현명한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체감하게 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