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구호에도 번진 일본 온라인의 혐한 정서
핵심 요약
구마모토현에 지원된 제주산 생수를 두고 일본 온라인에서 한국산을 거부하는 혐오 표현이 나왔다. 역사 갈등과 넷우익, 혐한 콘텐츠의 소비가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반복 생산해 왔다. 장기 침체와 엔저로 커진 사회적 불안이 재난 상황에서 외부 집단을 경계하는 정서와 맞물렸다.
대한항공이 강진 피해를 입은 일본 구마모토현에 제주산 생수 1.5ℓ 1만2000병을 지원한 뒤 일본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국산이라는 이유로 음용을 거부하거나 품질을 의심하는 댓글이 잇따랐다. 단수와 폭염으로 식수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물의 안전성에 관한 확인 없이 국적만으로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피해자를 위한 지원을 폄훼해서는 안 되며 긴급 구호가 우선이라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일본의 혐한 정서는 역사 갈등과 국내 정치, 인터넷 문화가 맞물리며 확대돼 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경쟁 의식이 커졌고, 2005년 독도와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면서 온라인의 부정적 담론도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넷우익’이 익명성을 바탕으로 배외적 표현을 반복 유통했다. 혐한 서적과 관련 인터넷 콘텐츠가 꾸준히 소비되면서 직접 경험과 무관한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가 문화 상품처럼 재생산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적 자신감의 약화도 외국인을 향한 경계심을 키운 배경으로 지목된다. 고도성장기였던 1980년대와 달리 장기 침체가 이어지고 중국과 한국이 전자산업과 조선업 등에서 성장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엔저로 일본이 값싸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되는 상황도 상실감을 자극했다. 2024년 일본의 외국인 주민은 약 380만명으로 역대 최대였지만 전체 인구의 약 3%다. 노동력 부족으로 외국인이 필요하면서도 증가 자체를 문화적 위협으로 보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재난과 사회 불안이 외부 집단에 대한 적대로 번진 역사는 오래됐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 일부 시민과 치안 조직의 행동은 조선인과 중국인 등이 희생된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다. 당시의 폭력과 현재의 온라인 표현을 같은 수준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정보가 부족한 위기에서 기존 편견이 특정 집단을 향하는 양상은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생수 논란도 확인되지 않은 위험보다 ‘한국산’이라는 표지가 먼저 공격 대상이 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