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의 귀환이 묻는 집과 환대
핵심 요약
영화 ‘오디세이’는 전쟁의 승리가 오히려 귀환할 집의 의미를 무너뜨리는 역설을 다룬다. 문명의 성취는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지만 배제와 군비경쟁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성경의 유배와 그리스도의 홈리스 경험은 집을 잃은 인간에게 환대의 공동체라는 길을 제시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통해 집을 잃은 인간의 실존을 비춘다. 전쟁 중에는 승리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지만, 부하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살육을 목격한 뒤에는 그들과 다시 이웃과 친구로 살아갈 공동체를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승리를 위한 전쟁이 정작 돌아갈 집의 의미를 무너뜨린 셈이다.
먼저 귀환한 아가멤논 왕은 아내에게 살해되고,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들어갈 때 신분을 숨긴 채 안전부터 살피라는 충고를 받는다. 왕의 지위와 자기 땅이 있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면 그곳을 온전한 집이라 부르기 어렵다. 속임수로 승리를 설계한 오디세우스에게 트로이의 비극은 귀환 내내 벗어날 수 없는 짐으로 남으며, 그의 지략과 용맹도 그 굴레를 끊지 못한다.
트로이 전쟁의 서사는 알렉산더와 로마 황제들의 정복전쟁에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에는 비즈니스를 포함한 여러 경쟁의 장에서도 되풀이된다. 양차대전과 원자탄의 파괴를 겪은 인류는 유엔을 세우고 안전보장과 군비 축소를 추진했지만, 최근에는 그 틀이 약화되고 각국이 새로운 군비경쟁에 들어섰다. 평화와 공존을 문명의 성취로 여겨도, 문명인과 야만인을 가르는 자부심은 배제와 차별로 변할 수 있다.
성경은 인류의 고통을 에덴이라는 집에서 쫓겨난 상태와 연결하고, 이스라엘의 질곡을 바벨론 유배로 압축한다. 영화 말미의 표현도 단순한 떠남보다 집을 잃은 유배의 의미에 무게를 둔다. 그리스도는 집 없는 상태를 단번에 끝낼 영웅이 아니라 머리 둘 곳 없는 존재로 인간의 고통에 함께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그 품에서 집을 찾은 사람들이 환대의 삶을 실천했고, 작은 공동체는 로마 세계에 새로운 소망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