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여름나기, 휴일·독서·호미씻이
핵심 요약
전근대 한국인들은 정기 휴일과 독서, 마을 공동체 잔치로 여름철 더위를 견뎠다. 고려와 조선의 관리들은 칠가와 경조사 휴무, 사가독서 등 제도화된 휴식을 누렸다. 농민들은 마지막 김매기 뒤 호미씻이 또는 풋굿을 열어 노동을 마무리하고 함께 쉬었다.
냉방 시설이 없던 전근대 한국인들은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에 일손을 놓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방식으로 여름을 났다. 신라·고려·조선 시대 기록에는 관리에게 정기 휴일을 주는 제도부터 선비들의 독서와 교유, 농민들이 노동을 멈추고 함께 즐긴 마을 잔치까지 계층과 생활 방식에 맞춘 휴식 문화가 남아 있다.
고려 관리들은 음력으로 매달 1일과 8일, 15일, 23일에 쉬는 ‘칠가’를 받아 대략 7일마다 업무에서 벗어났다. 병을 치료하거나 부모를 돌보고 가족 묘소를 찾을 때에도 별도의 휴가를 낼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혼례와 장례, 제사, 집안일을 위한 휴무가 주어졌으며, 세종(1397~1450)은 문신이 관청 업무를 떠나 독서와 집필에 전념하도록 하는 ‘사가독서’를 도입했다.
선비들에게 여름은 더위를 피하는 동시에 학문을 이어가는 계절이었다. 남분의 ‘해주일록’에는 가장 더운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유교 경전을 소리 내어 읽고 시를 익힌 생활이 담겼다. 독서는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을 가다듬고 더위를 견디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졌다. 선비들은 책상에만 머물지 않고 마을 어른들과 농민들의 공동 휴식 행사에도 어울렸다.
마지막 김매기가 끝나면 농민들은 개울에서 호미의 진흙을 씻어낸 뒤 걸어 두고, 힘겨운 논일이 잠시 끝났음을 표시했다. ‘호미씻이’로 불린 잔치에서는 냇가나 나무 그늘에 모여 하루 또는 여러 날 동안 음식과 술을 나누고 음악과 춤을 즐겼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풋굿’이라는 이름으로도 이어진 이 행사가 서로의 노동을 인정하고 가을 수확을 기다리며 함께 쉬는 기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