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일상이 교차하는 부다페스트 세 장소
핵심 요약
치타델라와 신발 기념물,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앞 광장은 부다페스트의 역사와 현재를 함께 보여준다. 치타델라와 자유 기념탑에는 독립 혁명 이후의 억압과 체제 변화가 새겨져 있다. 다뉴브강변의 학살 흔적과 대성당 앞 시민들의 목소리는 도시의 이면을 드러낸다.
부다페스트의 면모를 깊이 들여다볼 장소로 겔레르트 언덕의 치타델라와 다뉴브강가의 신발 기념물, 성 이슈트반 대성당 앞 광장을 꼽을 수 있다. 국회의사당 야경과 부다 왕궁, 어부의 요새가 도시의 화려한 외관을 보여준다면, 이 세 곳은 전쟁과 억압, 시민의 목소리가 축적된 공간이다. 보름간 이어진 여행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고 폭염이 계속됐으며, 출국 무렵에는 가뭄으로 다뉴브강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고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상황도 전해졌다.
해발 200m 남짓한 겔레르트 언덕의 치타델라는 평지가 대부분인 시내를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는 요새다. 1848년 독립 혁명이 실패한 뒤 오스트리아 제국 군대가 헝가리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세웠다. 동쪽 끝의 자유 기념탑은 종려잎을 든 여성 형상으로, 처음에는 나치로부터 헝가리를 해방한 소련군을 기리는 시설이었다. 사회주의 붕괴 뒤 러시아어 문구가 철거됐고, 해방 기념탑이라는 이름도 독립과 자유, 번영을 상징하는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국회의사당 인근 다뉴브강변에는 녹슨 신발 수십 켤레가 놓여 있다. 이곳은 1944년 겨울 나치에 협력한 헝가리 집권 세력이 유대인을 비롯한 민중을 살해한 현장이다. 당시 강에 수장된 희생자는 1만여 명에 이른다. 처형 직전 가죽 신발을 다시 쓰려는 목적으로 희생자들에게 신발을 벗게 했던 참상이 기념물의 형태에 담겼다. 하이힐과 작업화, 샌들뿐 아니라 대여섯 살 아이가 신었을 법한 작은 신발도 있어 가족 단위 희생의 비극을 드러낸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헝가리 역사의 시작을 상징하며, 시내에서는 지금도 종탑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그러나 도시의 현재를 보여주는 곳은 화려한 내부와 성 이슈트반 왕의 오른손 미라보다 정면의 작은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1인 시위부터 이란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반려견과 산책하는 주민, 더위를 피하는 관광객, 피켓과 현수막을 든 시민이 한 공간에 모이는 풍경은 박제된 관광 명소와 다른 부다페스트의 일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