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앞둔 김치동, 노동과 예술로 맞은 두 번째 봄
핵심 요약
껌을 팔며 생계를 시작한 김치동씨는 공장 노동과 독학을 거쳐 공무원이 됐다. 퇴직 뒤 택시와 버스를 운전했고, 현재도 학원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여든을 앞둔 그는 시인·작사가·연극배우로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1948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김치동씨는 껌을 팔던 소년에서 공장 노동자와 공무원, 운전기사를 거쳐 시인·작사가·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학원버스를 운전하며 생업을 이어간다. 그는 굴곡진 삶을 거듭 딛고 일어선 자신의 지난 시간을 ‘불사조 인생’으로 표현했다.
김씨는 홀로 4형제를 키운 어머니 아래에서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2년 1월 22일 서울로 올라와 미군 유통 과정에서 남은 껌을 다방에서 팔았다. 이후 제약회사와 직물회사, 벽돌공장 등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했고, 제약회사에서는 유리병에 엄지손가락을 크게 베이기도 했다. 노동 중에도 독학을 계속해 2년 만에 고등학교와 대학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영등포교도소 교도관으로 근무하다 서울시 행정직 시험에 합격해 관악구청 공무원이 됐다. 1975년 늘어난 전입신고 업무를 비롯해 동원예비군과 주택 관련 업무를 맡았다. 퇴직 후에는 한국교통 택시기사와 노조위원장을 거쳤으며, 명진운수와 대원운수에서 버스를 몰았다. 미래교통 관리부장으로 일하다 경영진 교체 뒤 회사를 떠났다.
김씨의 새로운 무대는 문학과 공연이다. 직접 쓴 ‘불사조인생’과 ‘남자의 일생’은 노래방 수록곡으로 등록됐고, 시집 ‘바람 같고 구름 같더라 남자의 일생’도 펴냈다. 지난해부터 연극 활동을 시작한 그는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극단 창작본능의 ‘죽는 게 억울하니?’에 출연한다. 대본 암기와 연기, 관객의 박수가 두뇌와 신체 활동은 물론 자부심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품은 시심은 오랜 노동의 시간을 지나 노년의 창작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