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구조자의 사투, 호머의 ‘생명줄’
핵심 요약
윈슬로 호머의 ‘생명줄’은 폭풍우 속에서 여성 조난자를 품에 안은 구조대원의 사투를 그렸다. 작품에는 당시 새로 개발된 밧줄·도르래식 구명 장비와 이를 직접 운용하는 구조자의 모습이 담겼다. 얼굴 대신 조난자를 붙든 두 팔을 강조해 장비를 넘어선 인간의 역할을 드러낸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두 사람이 밧줄 하나에 의지한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반쯤 의식을 잃은 여성 조난자를 구조대원이 품에 안았고, 그의 두 발은 거센 물결에 잠기기 직전이다. 폭발하듯 솟구치는 물보라와 금세 둘을 덮칠 듯한 파도가 화면을 채우지만 밧줄이 닿는 곳과 안전한 땅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 화가 윈슬로 호머(1836~1910)의 작품 ‘생명줄’이 포착한 구조 현장이다.
호머는 작품을 완성하기 한 해 전 새로 개발된 구명 장비의 시연을 지켜봤다. 이 장비는 밧줄과 도르래를 배와 해안 또는 두 선박 사이에 연결한 뒤, 바지를 입듯 다리를 끼우는 튜브에 조난자를 태워 옮기는 방식이었다. 그림에서는 스스로 밧줄에 매달릴 수 없는 여성을 구하려고 구조대원이 직접 튜브를 타고 물 위로 나섰다. 최신 장치가 마련됐어도 구조를 완수하려면 누군가 위험한 바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상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면은 대체로 잿빛이지만 구조대원의 얼굴을 덮은 붉은 천만은 강렬한 색으로 두드러진다. 그의 표정과 신원은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힘없이 늘어진 조난자의 몸을 놓치지 않으려 단단히 감싼 두 팔이 구조자의 역할을 보여준다. 호머는 남북전쟁에서 종군 삽화가로 활동한 뒤 화가가 됐으며, 말년에는 어촌에 정착했다. 이후 바다의 위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을 꾸준히 화폭에 담았다.
붉은색은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SOS 해상 구조대’의 수영복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 속 구조는 연출된 영웅담과 거리가 멀다. 드라마의 구조대원들이 슬로모션으로 달리고 물가에 오래 머무는 모습과 달리 실제 구조 현장의 여름은 한가하지 않다. ‘생명줄’은 구조 장비의 발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장비를 끌고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몫을 부각한다. 얼굴 없는 구조자의 팔은 타인의 생명을 지키는 행동 자체에 시선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