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 뒤 다시 선 주방, 모녀의 돌봄 교대
핵심 요약
방광암과 신장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자녀의 서울 자취집에서 회복 생활을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술집을 폐업한 부모를 모신 자녀는 처음으로 보호자의 역할을 맡았다. 어머니는 치료 뒤 다시 주방에 서며 일상과 자신의 몫을 되찾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한 자녀가 방광암과 신장암을 앓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신의 자취집으로 모시고 부양에 나섰다. 부모는 몇 해 전 자녀의 애칭을 붙인 술집 ‘또또포차’를 운영했지만 팬데믹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자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키운 것처럼 이제 자신이 어머니를 돌볼 차례라며 생애 처음 보호자 역할을 맡았다.
수술을 마친 어머니 김민자 씨는 배에 찬 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호흡 기구로 깊게 숨을 내쉬는 훈련을 반복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맞춰 모녀는 눈물이 고인 채 함께 배에 힘을 주며 여러 차례 호흡했다. 자녀는 부모의 처지를 모두 안다고 섣불리 말하는 대신 밝은 태도를 유지했고, 퇴원을 앞둔 어머니에게 기운을 되찾으면 다시 함께 장사하자고 힘을 북돋웠다.
김 씨는 평생 손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가는 일마저 미룬 채 주방을 지켰다. 암과 오랜 노동의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모녀에게 두 질환은 고된 세월이 남긴 흔적처럼 다가왔다. 치료를 거친 뒤에도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했고, 병상에 있던 김 씨는 서울 사람들이 좋아할 음식을 궁리하며 자신의 요리 솜씨가 여전한지 자녀에게 물었다.
집으로 돌아온 김 씨는 매일 자취집을 쓸고 닦고, 비어 있던 냉장고를 직접 만든 음식으로 채웠다. 연로하고 아픈 몸에도 책임과 다음 날 할 일이 생기면서 그는 다시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자녀에게 얹혀 살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자녀는 자신 역시 어머니의 청춘에 기대 오랫동안 자랐다고 받아들인다. 부모와 자녀의 자리가 바뀐 생활 속에서 돌봄은 한쪽의 빚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이어 주는 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