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옥중 유묵, 116년 만에 고국 품으로
핵심 요약
안중근 의사가 1910년 뤼순감옥에서 쓴 여덟 글자 유묵이 일본에서 환수돼 처음 공개됐다. 작품은 국제법이 군사력 앞에서 무력해지는 현실을 담았으며 제작 정보와 왼손 손도장이 남아 있다. 2025년 발견된 유묵은 소장자 협상과 복권기금 지원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로 돌아왔다.
광복 81주년을 앞두고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남긴 유묵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13일 처음 공개된 작품에는 ‘만국공법불여대포’라는 여덟 글자가 적혀 있다. 국제법도 강한 군사력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형을 앞둔 안 의사가 제국주의 침략과 국제 질서의 한계를 압축해 표현한 글이다.
세로 길이가 약 2m인 종이 두루마리에는 해서와 행서, 초서가 어우러진 빠르고 단호한 필치가 남아 있다. 아래쪽에는 대한독립에 대한 결의를 다지며 잘랐던 약지 일부가 짧게 나타난 왼손 손도장과 함께 ‘대한국인 안중근이 경술년 3월 뤼순감옥에서 쓰다’라는 취지의 서명이 새겨졌다. 제작 시기와 장소, 작성자를 작품 자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일본 초대 총리이자 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체포됐다. 그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수행한 정당한 전쟁 행위라며 국제법에 따른 재판과 포로 지위의 인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그를 교전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은 채 일반 살인범으로 기소해 사형을 선고했고, 안 의사는 닷새 뒤인 1910년 3월 26일 서른 살에 순국했다.
작품 뒷면의 기록에는 수감 중 안 의사를 인간적으로 대했던 뤼순감옥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한 경위가 남아 있다. 이후 일본인 수집가가 작품을 넘겨받아 표구하고 보존하면서 전래 과정도 온전히 이어졌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25년 5월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유묵을 확인한 뒤 소장자와 협상을 진행했으며,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같은 해 11월 국내 환수를 마쳤다. 이번 공개로 안 의사가 독립과 평화를 위해 남긴 문제의식과 희생을 국민이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