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순국 직전 유묵 115년 만에 환수
핵심 요약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뤼순감옥에서 쓴 ‘만국공법불여대포’가 일본에서 환수됐다. 유묵 뒷면 기록을 통해 최초 소장자와 최소 세 차례에 걸친 소유권 변동 과정이 확인됐다. 작품에는 국제법의 한계에 대한 안 의사의 인식과 특유의 힘찬 필체, 손도장이 담겼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쓴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가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광복절을 앞둔 1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환수 작품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뜻의 글씨에는 힘 있는 필체와 안 의사를 상징하는 선명한 손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국외재단은 지난해 5월 일본 현지 협력망을 통해 유묵의 존재를 확인한 뒤 진위와 소장 경위, 전승 과정을 조사하고 소장자와 협상했다. 국가유산청의 행정 지원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 반입을 마쳤다. 뒷면 묵서에는 하얼빈 의거부터 사형 집행까지의 경과와 최초 소장자, 표구·보존 이유 등이 기록됐다. 유묵은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했으며, 이후 표구해 보관한 인물 등을 거치며 최소 세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작품에는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 곧 ‘1910년 경술년 3월 뤼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안 의사의 순국일이 같은 달 26일이어서 처형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남긴 글씨로 확인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수행한 전쟁 행위라며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단순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국제법의 한계를 지적한 문구는 안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만국공법을 토대로 동양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마주했다. 유묵은 행서를 중심으로 해서와 초서를 섞었고, 여덟 글자를 단숨에 써 내려간 필세가 특징이다. 본문의 ‘萬’자를 초서로 쓴 방식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유묵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에서도 확인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은 국외 문화유산을 계속 발굴·환수하고 그 가치를 국민과 공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