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골 수습한 독립운동가 아들, 5·16 후 '빨갱이'로 몰려
핵심 요약
독립운동가 김정태의 아들 김영욱은 아버지 유골을 수습한 일로 5·16 쿠데타 후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고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4·19혁명으로 피해자 유족으로 인정받았으나 쿠데타로 반국가세력으로 재규정되는 고초를 겪었다.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50년간의 가치 혼란을 증언했다.

1960년 5월 23일 자 <부산일보>는 김정태 등에 대한 학살이 '이승만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악적 학살'이자 강백수 진영읍 부읍장의 사적 감정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김영욱은 사망자 수가 모두 밝혀지는 대로 진정서를 작성해 국회와 계엄사무소 등에 제출하고 살인행위 관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는 1960년 6월 5일 국회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아버지의 일을 증언하는 단계로 이어졌다.
국회는 김정태를 학살 희생자로, 김영욱을 피해자 유족으로 대하며 이승만 집권기의 평가가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로 상황이 급변했다. 2018년 12월 11일 자 <경향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김영욱은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빨갱이를 장례 지냈기 때문에 너도 빨갱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수사관들은 김일성을 만났다고 진술하면 풀어주겠다며 거짓 진술을 유도했으나, 김영욱이 응하지 않자 거꾸로 매단 채 고춧가루·식초와 각종 오물을 섞은 짬뽕 국물을 얼굴에 들이부었다.
김영욱은 아버지를 비롯한 학살 피해자들의 유골을 수습한 일로 서른아홉 살 때 징역 7년 형을 받았다. 석방 후에도 어선 납북 사건이나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끌려갔다가 아무 데나 버려지는 고초를 겪었다. 4·19혁명을 계기로 인정받기 시작했던 피해자와 유족들이 5·16과 함께 반국가세력으로 재규정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가치 판단이 뒤바뀐 것은 5·16으로부터 50년이 흐른 2011년이다. 그해 8월 7일 대법원은 고 김영욱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학살자유족회 활동이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북한을 찬양·고무하고 동조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원심판결을 지지했다. 피학살자유족회의 목적이 북한 찬양이 아니라는 상식이 5·16 이후에는 통하지 않았던 점은 4·19를 계기로 바로 세워지는 듯했던 사회 가치관이 또다시 어지러워졌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