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식의 3·1운동·임정 수립 역할 재조명
핵심 요약
신규식이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설계하고 추진한 핵심 인물이라는 평가가 제시됐다. 독립운동가 파견 주체와 신규식의 신해혁명 참여 시점을 놓고 연구자 사이에 견해차가 확인됐다. 신규식의 활동과 역사적 위상을 재검토하는 콜로키움이 11일 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연구해 온 쑨커즈 중국 푸단대 교수가 예관 신규식(1880∼1922)을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설계하고 추진한 핵심 인물로 평가했다. 신규식의 지위와 기여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은 쑨 교수가 ‘예관 신규식 선생 연보장편’을 집필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그는 1989년부터 관련 연구를 이어 오며 중국에 남은 여러 중요 사료를 발굴했다.
쑨 교수는 신규식이 김규식 등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1918년 말부터 방효성·곽경·조소앙·장덕수·선우혁·서병호·여운형 등을 국내외 각지로 보내 밀서를 전달하며 식민통치에 맞선 민중운동을 요청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장덕수·선우혁·여운형의 파견 주체가 신규식이 아니라 신한청년당이었다고 반박해 인물별 파견 경위를 둘러싼 견해차를 드러냈다.
신규식은 상하이에서 활동하며 임시정부 국무총리대리와 외무총장 등을 지냈다. 쑨 교수는 그가 각지 대표로 전한족대표위원회를 구성해 독립을 선언하고 새 국가 건설을 위한 최고위원회 조직을 제안한 일을 사실상 의회와 정부를 세우려는 구상으로 해석했다. 신규식이 중국 신해혁명에 참여했는지도 주요 쟁점이다. 그의 시문집 ‘아목루’를 검토한 결과, 1911년 3월 하순 조선을 떠나 5월 초 상하이에 도착해 같은 해 10월 우창기의에 직접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제시됐다.
이 해석은 신규식이 조선에서 우창기의 소식을 접한 뒤 1911년 11월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국내의 우세한 견해와 차이를 보인다. 신규식의 활동 시점과 독립운동가 파견 주체를 둘러싼 논의는 11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열리는 콜로키움 ‘예관 신규식과 3·1혁명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다뤄진다. 행사는 광복회가 주최하고 광복회학술원·예관신규식선생기념사업회·매헌연구원이 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