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줄 세우기 대신 내신 경쟁…입시 개편의 역설
핵심 요약
수시 비중이 전체 모집 인원의 80%까지 커졌지만 대입 경쟁의 중심은 수능에서 내신으로 이동했다. 평가 자료가 잇따라 제외되면서 내신의 영향력이 확대됐고, 성적을 다시 시작하려는 자퇴 선택까지 나타났다. 한국의 노동시장과 학벌 구조를 반영해 객관성과 현실성을 갖춘 입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전국 단위 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가르던 대입 제도가 수시 중심으로 전환됐지만, 경쟁의 축은 수능에서 내신으로 옮겨갔다. 현재 수시모집은 전체 모집 인원의 80%를 차지한다. 고교 1학년부터 성적이 누적되는 구조에서 중간고사 한 번의 실수도 만회하기 어렵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자퇴를 통해 성적을 다시 시작하려는 이른바 ‘내신 리셋’까지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대입 정책은 소수의 특기자전형에서 출발해 학생의 잠재력을 여러 자료로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로 확대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되고 이명박 정부에서 규모가 커진 뒤 박근혜 정부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공정성 논란 속에 교외 경시대회와 논문, 자격증에 이어 교내 수상 실적과 교사 추천서도 평가 대상에서 빠졌다. 고교명까지 가려지면서 남은 자료 가운데 내신의 영향력이 커졌다.
최근 내신 체계가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자 한 등급 차이에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도 더 무거워졌다. 이런 현상은 학벌이 노동시장 첫 진입과 직업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 정규직 보호가 강한 환경에서는 경쟁이 취업 초기 단계에 집중되고 대학 간판의 영향도 커진다. 이 때문에 입학사정관의 주관적 판단보다 수치로 확인되는 객관성을 요구하는 압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입학사정관의 폭넓은 재량은 유연한 노동시장과 대학의 자율성을 토대로 발전한 제도다. 이를 국내 현실과 분리해 적용하면 줄 세우기를 없애려던 정책이 더 이른 시기의 내신 경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 노동시장 개혁이 장기 과제라면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고용 구조와 입시 유인을 함께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1994년 수능 도입 당시 비판받았던 교실의 입시 경쟁은 30여 년이 지나 같은 반 학생끼리 등급을 다투는 형태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