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허세가 만든 교실의 총구 소동
핵심 요약
불량배를 피하려 마련한 모조 권총이 학교에서 진짜 총으로 오인되는 소동을 일으켰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지나며 장난과 실제 총성이 교차하는 시대를 겪었다. 서유석은 당시의 허세와 무모함을 되돌아보며 라디오 음악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서유석은 학창 시절 아현동 등굣길에서 학생들의 돈과 학교 배지를 빼앗는 불량배들을 피하려고 모조 권총을 허리에 차고 다녔다. 몸이 빨라 맞서 싸우거나 달아나곤 했지만 겁먹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 호신용 물건을 찾은 결과였다. 진짜 권총처럼 보이는 물건을 꺼내면 시비를 걸던 이들이 달아났고, 그가 총을 지니고 다닌다는 소문은 교내까지 퍼졌다.
모조 권총은 미군 고위 장성 집안의 같은 반 친구가 미국의 가족에게 부탁해 구한 것으로, 당시 가격은 2만환이었다. 공기총알이 발사되고 방아쇠를 당기면 작은 소리도 나는 정교한 물건이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서유석의 책상 서랍에서 이를 꺼내 친구들에게 겨누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교사에게까지 총구를 돌렸다. 육군 대위 출신인 교사는 진짜 총으로 여겨 두 손을 들었고, 가짜임이 확인된 뒤 권총을 압수했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도 크게 놀랐다.
모조품이 교실을 뒤흔든 시기, 서울 거리에서는 실제 총성이 이어졌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서유석은 친구들과 광화문과 세종로의 시위 현장을 돌아다녔다. 경찰의 최루탄에 사람들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모습을 호기심으로 지켜봤다. 대학생이던 형은 경희궁 앞 시위 도중 경찰의 총격으로 바로 옆 사람이 쓰러지는 일을 겪었다. 이듬해 5·16 군사정변 때에는 제1한강교 방면의 총성이 신촌 집까지 들렸고, 한동안 침묵하던 라디오에서는 군의 정권 장악과 휴교령이 흘러나왔다.
서유석은 당시 용기와 무모함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장난감 총구가 타인에게 줄 공포도 헤아리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은 권총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었다는 깨달음도 뒤늦게 얻었다. 어머니의 기도가 위험을 모두 없앴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큰 사고 없이 혼란의 시절을 지나 자신의 허세를 부끄러워할 수 있게 된 것까지 은혜로 받아들였다. 거리에서 돌아온 밤마다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다른 세계를 만났고, 이후 팝송과 주크박스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