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뿌리 된 생존권 투쟁, 55년의 기억
핵심 요약
1971년 강제 이주 주민 5만여 명이 생존권을 요구한 8·10 성남 항쟁이 55주년을 맞았다. 성남시는 기념식과 기록영상, 사진전을 통해 항쟁과 도시 성장의 역사를 재조명했다. 항쟁은 성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1973년 시 승격으로 이어진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1971년 서울에서 강제로 이주한 주민 5만여 명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정부에 맞선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이 55주년을 맞았다. 성남시는 10일 오전 시청 로비에서 기념식을 열고 도시의 출발점이 된 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시민들의 연대·도전 정신을 되새겼다.
기념식은 성남시립국악단과 시립합창단, 춤자이 예술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헌시 낭송과 붓글씨 쓰기 시연, 당시 현장을 담은 기록영상 상영 순으로 진행됐다. 광주대단지 조성 과정과 주민들의 생활, 항쟁 당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전시됐다. 사진전은 기념식 종료 후 성남문화원으로 옮겨 14일까지 계속된다.
항쟁은 1971년 8월 10일 서울의 무허가 주택 철거 정책으로 경기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강제 이주한 주민들이 최소한의 생계 수단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벌인 집단 저항이다. 현재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에 해당하는 이주 지역에는 제대로 된 생활 기반이 갖춰지지 않았고, 생계난에 내몰린 주민 약 5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이 투쟁은 해방 이후 처음 발생한 도시 빈민 투쟁으로도 평가된다.
광주대단지 항쟁은 성남의 도시 정체성을 형성한 사건으로 자리 잡았으며, 항쟁 약 2년 뒤인 1973년 7월 1일 성남시는 시로 승격됐다. 성남시와 성남문화원은 학술회 개최와 주민 증언·자료 수집, 자료집 발간을 통해 기록과 보존을 이어왔다. 시는 2024년 12월 16일 조례를 개정해 공식 명칭을 ‘광주대단지 사건’에서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으로 바꿨다. 주민들이 삶을 지키기 위해 나선 의미를 분명히 반영한 조치로, 시는 앞으로도 연대와 공동체 정신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