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의 음악 뿌리 된 장례 행렬과 찬송
핵심 요약
서유석은 창천동과 봉원사 화장터 길에서 다양한 생활의 소리를 익혔다. 상여 행렬의 노래와 교회의 피아노·찬송은 어린 시절 음악적 토대가 됐다. 평온했던 유년기는 다섯 살 때인 1950년 6·25전쟁으로 막을 내렸다.
가수 서유석의 어린 시절 음악적 감각은 서울 서대문 일대의 생활 풍경 속에서 자라났다. 창천동과 봉원사 화장터로 이어지는 길에서 들은 장례 행렬의 소리, 교회에서 접한 찬송가, 동네에 울려 퍼지던 여러 노래가 훗날까지 남은 음악의 바탕이 됐다. 어린 서유석에게 노래는 따로 배우는 기술보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소리에 가까웠다.
봉원사 화장터로 향하는 상여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행렬의 뒤를 따라 언덕길을 올랐다. 앞소리꾼과 상여꾼이 주고받는 노래를 곁에서 듣고, 장난을 치거나 먹을 것을 얻기도 했다. 슬픔과 죽음이 놓인 길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낯선 가락과 풍경을 마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유석은 상여소리를 들으며 죽은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다.
그가 살던 창천동 일대에는 집들이 드문드문 자리했고, 가까운 교회에서는 어머니가 일을 했다. 예배 때 흘러나오는 피아노와 찬송, 혼례를 준비하는 소리는 어린 시절의 익숙한 배경음이 됐다. 한국식 장례 행렬과 교회의 서양식 음악, 사람들의 생활 소리가 한 동네 안에서 뒤섞였고, 서유석은 특별한 구분 없이 그 모든 소리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른 뒤 서유석은 상여 뒤에서 들었던 노래를 죽음만을 말하는 소리로 기억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배운 부활의 의미와 겹치면서, 떠남 뒤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가락으로 받아들였다. 함께 부르고 서로 주고받던 상여소리의 형식도 그의 음악 안에 남았다. 창천동과 홍제동을 오가던 유년의 평온한 시간은 다섯 살이던 1950년 6·25전쟁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