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유산에서 찾은 작가의 몫
핵심 요약
최민석 소설가는 창작을 오래된 서사의 원형에 자신만의 차이를 더하는 작업으로 규정했다. 괴물과 거인 서사는 고대 신화와 고전 작품부터 이어진 공통 구조를 지닌다. 선대 작가의 유산을 받아들인 뒤 문장과 세부 묘사를 다듬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
최민석 소설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서사의 원형 위에 작가만의 작은 차이를 심고 키우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레이몽 크노가 제시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구분을 과제 해결의 두 갈래로 해석하며, 투쟁 끝의 승리와 고난 뒤의 귀환이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고 봤다. 특히 모든 기행문은 화자가 끝내 돌아온다는 점에서 ‘오디세이’의 계보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작법서 ‘캐치 더 캣’이 분류한 ‘몬스터 인 하우스’ 구조도 사례로 제시했다. ‘죠스’는 해변과 식인상어, ‘에일리언’은 우주선과 외계생명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공원과 괴생명체를 각각 집과 괴물의 자리에 배치한다. 세 작품의 재앙은 관광 수입, 외계생명체 확보 등 인간의 탐욕과 연결된다. 이 구조의 원형으로는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와 포세이돈과의 약속을 저버린 미노스의 욕망이 제시됐다.
거인이 등장하는 작품을 곧바로 ‘진격의 거인’의 모방으로 보는 시각에도 선을 그었다. 거인 서사는 ‘고질라’와 ‘킹콩’, ‘걸리버 여행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변신 이야기’의 기간테스를 거쳐 약 2800년 전 ‘오디세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소설가로 제2의 삶을 시작한 당시에는 세상에 없던 이야기로 독자를 새로운 세계에 안내하려 했지만, 주요 서사의 뼈대가 오래전에 마련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창작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좌절 대신 앞선 작가들이 남긴 유산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호메로스와 볼테르, 세르반테스의 작품은 신인 작가가 이야기의 방향을 찾도록 돕는 별이 됐고, 단테와 발자크가 일군 토대는 새로운 문장을 시작할 땅이 됐다. 최 소설가는 완전히 낯선 원형을 발명하기보다 자신의 개성과 세부 묘사를 더한 씨앗을 가꾸는 일을 작가의 몫으로 정리하고, 빈 화면에 문장을 쓰고 고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