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에서 시작된 공익, '류 국장'의 15년
핵심 요약
류 국장은 생계를 위해 대전YWCA에 들어갔으나 15년간 간병사 권리 보호와 폭력 피해자 지원에 헌신했다. 그는 자신을 공익활동가라고 부르지 않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잇는 역할을 해왔다. 그의 삶은 거창한 구호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를 바꾼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전YWCA와 여성긴급전화 1366 대전센터에서 일하는 류 국장은 자신을 공익활동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2009년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생계를 목적으로 대전YWCA에 발을 들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보다는 아이들의 저녁밥을 책임져야 하는 마흔 살 가장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후 15년 동안 그는 간병사 권리 보호와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등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지역사회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류 국장이 처음 맡은 일은 100명이 넘는 간병사들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그는 간병비를 받지 못한 간병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가 보호자와 대치했고, 환자로부터 부당한 말을 듣는 간병사를 위해 병실로 직접 찾아갔다. 2022년부터는 여성긴급전화 1366 대전센터 사무국장을 맡아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 피해자를 위해 경찰, 상담소, 쉼터, 병원, 법률기관을 연결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사무실보다 현장에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경찰서와 행정복지센터, 병원, 편의점 등을 돌며 폭력 피해자 발견 시 1366을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류 국장의 삶은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여러 번 맞았다. 1990년대 초 금융기관에서 일할 때는 성별에 따른 차별과 권위적인 상사에 맞서 '뾰족한 사람'으로 불렸다. 결혼과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며 성격이 둥글어졌고, 남편 사망 후 생계를 위해 YWCA에 들어갔다. 2년 3개월 뒤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YWCA를 떠났다가도 다른 복지기관 면접에서 'YWCA에 자리가 생기면 다시 가겠다'고 말할 만큼 그곳에 애착을 느꼈다. 2014년 복귀한 그는 청소년시설 위캔센터에서 회계와 총무를 맡았으며, 조직이 필요한 자리라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맡았다.
류 국장은 인터뷰 내내 '나는 공익활동가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특별한 사건으로 말하지 않았으며, 성과는 직원들에게 돌리고 부족함은 자신의 몫으로 남겼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간병사들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매일 죽는다'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며 '내 생각을 먼저 내려놓는 연습'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는 거대한 구호보다 한 사람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