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점과 색선으로 되살아난 이대원의 화업
핵심 요약
이대원의 사후 첫 대규모 회고전이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으로 70년 화업을 조명한다. 그는 한국 전통의 색과 선을 토대로 어느 미술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 풍경화를 구축했다. 밝은 화면은 굴곡 없는 낙관이 아니라 전쟁과 우울을 견딘 뒤 되찾은 삶과 아름다움의 기록이다.
한국 근현대 구상회화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이대원(1921~2005)의 70년 화업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펼쳐진다. 사후 첫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초기작부터 말년의 대형 회화까지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이중섭·박수근·장욱진과 함께 구상회화의 주요 작가로 평가되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그의 자리를 다시 살핀다.
경성제2고보에서 서양화와 조선 공예를 배우고 학생 미전에서 특선한 그는 부친의 뜻에 따라 경성제대 법대로 진학했다. 해방 뒤 화단을 나눈 국전 사실주의와 앵포르멜, 이후 홍익대 동료들이 이끈 단색화 어디에도 편입되지 않고 독자적인 회화를 구축했다. 그의 색점은 눈에서 섞이는 서양 점묘주의와 달리 분홍과 초록이 각각의 색으로 남는다. 전통 자수의 색실과 나전칠기의 자개, 전통 회화의 점과 선을 유화의 조형 언어로 바꾼 결과다.
작업의 중심에는 부친이 파주에 마련한 1만5000평 규모의 과수원이 있었다. 이대원은 1973년 그곳에 화실을 짓고 약 30년간 거의 매주 풍경을 그렸다. 1970년대 ‘농원’에서 공간과 색점이 균형을 이뤘다면 1980년대에는 점이 선으로 길어지고 공간이 압축됐다. ‘담’(1986)의 흰 벽은 미색·분홍빛·푸른빛으로 깊어졌고, ‘농원(秋)’(1994)에서는 하늘과 산, 들판의 경계가 색선 속에 흩어졌다. ‘인왕산’과 ‘사과나무’(이상 2000), 7m 규모의 ‘도리화’(2001)는 원근을 걷어낸 색점과 색선으로 화면을 채운다.
그는 1959년부터 8년간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인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김환기와 박수근 등의 작품을 알렸고,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작품을 직접 사들이기도 했다. 홍익대 초대 미술대학장과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도 지냈다. 밝은 색채와 안정된 경력은 그를 ‘행복한 화가’나 상업적 인기 작가, 원로 행정가로 기억하게 했지만 그 이면에는 법대 진학의 좌절과 전쟁의 참상, 깊은 우울이 있었다. 아내의 권유로 그림을 다시 시작한 그는 파주 농원에서 삶의 감각을 회복했고, 상처 끝에 선택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남겼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열린다.